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의 여파로 이를 모방해 경제공동체를 만들려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내에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로존이 각국의 경제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통합을 했다가 붕괴 위기까지 몰린 현실을 보며 아세안 내에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경제통합에도 제동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태국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ㆍ라오스ㆍ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오는 2015년까지 관세축소, 금융시장 통합, 자유로운 국경이동 등을 골자로 한 경제공동체를 추진하기로 지난 2006년 합의했고 나아가 유로화 같은 단일통화 출범도 논의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순항하던 유로존처럼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최근 유로존 내에서조차 통합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나오자 이를 다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말레이시아 증권거래소의 타주딘 아탄 최고경영자(CEO)는 13일(현지시간) 쿠알라룸푸르에서 권역 내 통합 증권거래소 설치와 관련해 "경제규모가 비슷한 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ㆍ태국만 참여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약소국인 나머지 7개 회원국까지 통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앞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유로존 위기는 단일통화를 추진하려는 아세안에 반면교사"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는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경제를 회복시켰지만 유로존 국가는 그게 불가능해졌다"며 "경제격차가 큰 아세안 각국이 이를 모방하면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세안 내 최대 경제국인 태국은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345조달러에 달해 최빈국인 라오스(7조8,910억달러)에 비해 규모가 44배나 크다. 경제규모 차이만큼 각국의 화폐가치 차이가 큰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고 경제통합을 이룬다면 인위적인 화폐가치 조정으로 약소국은 더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강력한 중앙통제 장치가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 등에서는 국경선을 놓고 벌어진 분쟁으로 수십명이 사망하는 등 권역 내 분쟁을 타결할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 위기가 발생하면 유로존보다 더 해법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의 산제이 매서 애널리스트는 "(아세안 경제공동체가 출범할) 2015년은 너무 이르다"며 "회원국 간의 경제규모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총체적 경제통합은 심각한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