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ㆍ31 대책’을 통해 밝힌 ‘비축용 임대주택 50만가구 건설’ 방침이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는데 누가 감히 반대표를 던질 수 있을까마는, 바라보는 시선이 썩 곱지만은 않아 보인다.
대책은 비축용 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임대주택 펀드’ 조성에 가장 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정도 물량을 공급하려면 재원마련이 최대 과제인 만큼 언뜻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펀드 수익률과 재정부담 최소화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뒤로 밀려버렸다는 데 있다.
임대주택의 수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입지’와 ‘가격’이다. 입지와 가격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내 집이 아니다’는 임대주택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임대주택 펀드의 수익률도 입지와 가격에 대한 엄밀한 사전검토를 전제로 해야 당연하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한 것은 ‘평균 30평형에 임대보증금 2,500만원, 월 임대료 52만원’이 전부다. 지역과 평형별 편차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펀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한 숫자놀음에 불과해 보인다. 입주자에게 우선 매입권을 허용할지 여부 역시 사업의 취지나 성패에 직결된 중대 요인임에도 명확히 검토된 바가 없다.
국민임대 100만가구 건설을 지상과제로 삼아온 참여정부 말기에 갑자기 ‘비축용 임대 50만가구’가 등장한 배경도 의문스럽다.
정부는 30평형 임대주택의 건설원가를 1억8,000만원으로 가정했다. 바꿔 말하면 평당 600만원으로도 수도권에 괜찮은 중형 아파트를 수십만가구나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반값 아파트’를 지어낼 재주와 땅이 있다면 왜 진작 값싸게 분양하지 못했을까.
1~4분위 저소득층을 위한 국민임대 건설에도 허덕이는 마당에 굳이 임대주택을 더 늘리기 위해 초대형 펀드를 조성하고 십수년에 걸쳐 회수하는 복잡한 계산법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서민ㆍ중산층이 진정 바라는 게 평당 600만원짜리 분양주택일지, 월세 52만원짜리 임대주택일지 답은 자명해 보인다.
펀드에 돈을 붓는 연기금과 정부, 사업을 수행할 공기업이 전혀 손해를 보지 않고 국민들은 안정적 주거를 보장받는다고 한다. 이런 기막힌 ‘윈윈’ 게임을 제쳐두고 주택공사ㆍ토지공사는 왜 수십조원의 빚을 떠안으며 여태 손해보는 장사를 해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