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시내의 어느 지하철 역사를 가든 대형 편의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아침 일찍 출근길을 서두르다 식사를 걸러도 문제가 없다. 단돈 몇 천원만 내면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전날 뉴스를 챙겨보지 못했다면 편의점 한 켠에 놓여 있는 조간 신문도 골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물품들이 가지런히 진열된 깨끗한 편의점 안에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니 세상 참 좋아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 좋은 세상 탓에 오히려 삶이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부터 지하철역을 무대로 신문ㆍ복권이나 음료수 등을 팔아 생계를 이어오던 장애인ㆍ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들이다. 이들은 날이 갈수록 지하철 역사 환경이 개선되는 것이 영 달갑지 않다.
서울 지하철 역사 안에 대형 편의점이 입점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부터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시의 골칫거리인 지하철 공사들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역사 내 편의점 도입을 결정했다. 이들 기관의 부대수익을 늘려 빚을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취지였다.
효과는 있었다. 올해 기준 서울메트로(1~4호선)와 도시철도공사(5~8호선)의 지하철 역사 내 대형 편의점 수는 162개소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지하철 공사의 부대 수익도 늘었다고 하니 빚 탕감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놓친 점이 한 가지 있는 것 같다. 깨끗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빚을 탕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저마다 편의점을 원하는 사이 문을 닫는 지하철 매점상은 늘고 있다. 한 때 280곳 가까이 되던 이들 매장은 현재 30% 가까이 줄었다.
서울시는 재래시장의 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각 자치구와 합동으로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입점을 막는 조례를 도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중앙정부에 대해서는 SSM조례가 무력화될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이 운영하는 기관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못 본 척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것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