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1994년과 2011년의 차이

지난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 직후 이른바 대북 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은 한결 같았다. “조만간 북한 정권은 붕괴할 것이다.” 심지어 ‘이르면 3일내’라는 구체적 시기까지 못 박기도 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최근까지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징후가 포착될 때마다 ‘북한 체제 붕괴론’이 심심치 않게 나왔지만 정작 김 위원장의 사망이 확인된 이 때 “북한 정권은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는 말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판단해 보면 지난 1994년보다 지금의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은 더 높다. 김일성 사망 당시는 이미 20년간 후계 수업을 받았던 김정일이 존재감을 확고한 상태였다. 반면 현재는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것조차 2년여 밖에 되지 않고 ‘풋내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20대의 청년이 북한을 이끌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994년 당시 북한 붕괴론이 ‘상대방 붕괴가 곧 나의 승리’라는 냉전적 사고 하에서 나온 비이성적 희망에 기반했다면 현재의 체제 유지론은 ‘상대방을 자극해 우리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실용적, 전략적 고려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은 전략적으로 적절해 보인다. 이제 우리 체제는 굳이 북한을 적대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성숙했고,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린 것이다. 단 조문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아쉽다. 지난 1994년 당시 북한 붕괴론과 더불어 남북 관계를 헝클어 놓은 사건이 바로 조문 파동이다. 당시의 냉전적 감정 논리에 집착해 조문 여부를 두고 남남 갈등이 극대화되고, 남북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 전례가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정부는 조문 문제에 대해 북한이 조문을 해온 인사(김대중ㆍ정몽헌 유족) 측에만 상호 조문을 허용한다는 이른바‘상호주의적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상호주의는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를 대등하다고 여기는 상태에서 취해야 할 액션이지, 지금처럼 상대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우리가 택해야 할 원칙은 아니다. 좀 더 포용적이고 통 큰 선택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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