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늑대와 춤추는 중국 지도부


지난 2001년 11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불과 한달 앞두고 중국 매체들은 '늑대가 몰려온다((狼來了)'며 목소리를 높였다. WTO 가입 후 몰려오는 외국 기업들이 중국 언론에는 두려운 늑대 떼로 보였다. 경쟁을 모르고 곱게 자란 중국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과 경쟁을 하다 보면 줄줄이 망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나 WTO에 가입하고 몇 년이 지나도 중국 기업들의 연쇄도산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중국 기업들은 늑대와 함께 춤을 췄다. 세계의 공장을 무시할 수 없는 외국 기업들의 중국 의존도는 점점 높아졌고 정보기술(IT)ㆍ자동차 업종 등의 경우는 합작이란 틀에 묶여 오히려 외국 기업이 중국 기업들의 성장발판이 됐다.


중국이 15년이란 지루한 시간을 끌었던 WTO 가입을 2001년 결정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물론 경제적인 이유다. WTO란 다자 간의 구도를 통해 미국과의 직접적인 통상마찰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 우선됐다. 하지만 이런 직접적인 배경 뒤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숨어 있다. 개혁개방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을 향해 국제화를 위해선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치무대에서 밀어낼 수 있는 명분을 찾았다. 늑대를 불러 반대세력을 무기력하게 만든 셈이다.

12년이 지난 2013년. 중국 주변에서는 또다시 늑대들이 울부짖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ㆍ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은 물론 해외투자은행들도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고한다. 여기다 중국 내에서도 고도 성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성장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고 고도성장의 후유증인 빈부격차, 지방 간 격차, 지방부채, 그림자금융 등의 리스크가 예상보다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리커창 총리는 이에 대해 성장세 둔화가 지속되지만 대외변수에 의한 것이고 경제발전과정에서 성장세 둔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중국 경제에 자신감을 나타낼 뿐이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외신들이나 중국 내부의 비판적인 목소리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어느 정도 용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비판을 받아들인다.


왜 중국 지도부가 지나칠 정도의 중국 경제의 경착륙에 대한 우려를 용인할까.

관련기사



중국 지도부의 입장에서 개혁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현 시점에 WTO와 같은 사나운 늑대가 필요하다. 석유방처럼 커질 대로 커져 세력화된 국유기업, 이자율 제한의 덫에 갇혀 경쟁력은 상실하고 덩치만 키운 은행 등은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다 보시라이 사건에서 드러났듯 개혁개방으로 인한 부작용을 기회로 좌파세력의 결집은 현 중국 지도부에 위협 요인이다.

그렇다면 시리체제가 한방에 전세를 역전시켜 경제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을 굴복시키는 카드는 뭘까.

중국 내 전문가들은 시리체제 개혁의 저항세력에 대한 카드 중 하나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TPP가 미국 주도의 중국 고립주의라고 비난했던 중국은 지난 7월 미중경제전략대화를 통해 중국이 TPP가입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히며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겉으로 볼 때는 중국이 TPP를 두고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중국은 국무원 산하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TPP 연구를 시작했고 협상전략도 준비 중이다. 일각에서는 다음달 1일 가동되는 상하이자유무역지대가 TPP를 위한 예행연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상하이자유무역지대 시행방안으로 알려진 ▦서비스 무역 자유화 ▦금융서비스 개방 ▦위안화 자유태환 ▦자본과 인력의 자유이동 등은 TPP 가입국가간 기본 원칙과도 일맥상통한다.

개혁개방을 업그레이드하며 금융 등 경제개혁을 시도하는 중국 5세대 지도부에게 TPP는 12년 전 개혁 저항세력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WTO만큼 효과가 크다. 국유기업 구조조정, 시장에 대한 기능 강화 등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에게 TPP란 늑대는 충분히 위협요인이기 때문이다. TPP협상도 WTO처럼 중국 지도부에게 시간은 충분하다.

중국이 TPP에 참여 가능성이 낮다는 교과서적인 시나리오만 붙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중국을 포함한 새로운 경제권에 대한 고민도 해봐야 할 시점이다.

김현수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