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다시뛰자 한국기업] <3> 시련의 철강산업

중국에 밀리고 규제에 치이고… '철강 코리아' 뿌리 흔들린다<br>中 건설자재부터 최고급 자동차강판까지 진출<br>한국은 경제민주화·환경법안에 존립마저 위태<br>"정부,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전기료·세금폭탄"

국내 한 제철소 직원이 방열복을 입고 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고 있다. 한때 한국 철강업계는 세계 철강 산업의 리더였지만 최근에는 중국에 자리를 내주기 직전까지 몰렸다. 중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 철강업계 구조를 개편해 자국 업체들을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았다. /서울경제DB


"이제는 양은 물론 질적 측면에서도 중국 철강업체를 무시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다 국내 사정은 악화되고 있어 우리나라 업체들이 설 곳을 잃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24일 국내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철강사들의 급격한 성장에 대해 '위기' 수준을 넘어 '공포' 단계에 이르렀다고 표현했다. 질 낮은 저가의 범용자재들만 들어오던 데서 벗어나 최고급 수준으로 불리는 자동차용 강판까지 국내 시장에 이미 침투해 이젠 결코 중국을 '마이너리그'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철강업체들은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에서 자국 정부의 직ㆍ간접적 비호 아래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우리 철강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기대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세계 철강소비의 절반에 육박하는 방대한 중국 시장 개척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 철강업체의 임원은 "도와줘도 모자랄 판인데 전기요금도 올라가고 법인세 인상 움직임도 있고 경제민주화라고 해서 팔다리를 조여오며 기업들을 범죄자 취급하니 일할 맛이 안 난다"고 원망 섞인 말을 했다.

중국의 고도성장으로 이미 세계 철강산업의 중심은 아시아, 그 중에도 중국으로 이동했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1억2,850만톤으로 세계 시장의 15.1%를 차지했던 중국의 조강생산 능력은 2012년 기준으로 7억1,654만톤, 비중으로는 47.2%까지 늘어났다. 국내 업체들도 규모를 4,310만톤에서 6,907만톤까지 늘렸지만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수치는 5.1%에서 4.5%로 오히려 줄었다.


업체별 조강생산 순위를 봐도 중국 업체는 10위권 내에 허베이철강그룹(3위), 바오산스틸(4위), 우한강철그룹(6위), 샤강그룹(7위), 셔우강그룹(8위), 안스틸그룹(10위) 등 6개나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서는 포스코(5위)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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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강산업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건설ㆍ토목 등의 분야에서 철강 수요가 크게 늘고 조선ㆍ자동차 등 연관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빠른 속도로 좋아졌다.

중국 철강업체의 발전에 따라 세계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철강업체 간 경쟁관계 역시 심화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양국의 철강산업 수출경합도는 2000년만 해도 28.1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두 배 가까이 늘어 55.1까지 증가했다. 수출경합도는 0부터 100까지의 수치로 나타내는데 숫자가 클수록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에 철강제품을 수출할 때 전보다 중국 업체를 더 많이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생산 및 수출이 확대되고 수출품목이 다변화됨에 따라 자국 내 수요만 충족하던 데서 벗어나 세계 시장에서 국내 업체와의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과의 경쟁은 철강제품 전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 들어온 중국 업체의 철강제품은 건설용 자재로 주로 쓰이는 철근ㆍ형강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선박에 쓰이는 후판, 가전제품용 열연ㆍ냉연강판 등 고급재 시장까지 확대되는 추세고 최고급 철강제품으로 분류되는 자동차용 강판에까지 중국 업체들이 진출한 상황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아직 물량은 많지 않지만 바오산스틸에서 강판을 납품 받고 있다"며 "품질은 물론 가격면에서도 만족스러운 수준이라 향후 물량을 늘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의 전방위적 압박에 글로벌 경기침체까지 이어지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내 철강사들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20% 이상 급감했다. 동부제철은 모그룹이 위기를 겪으며 인천공장을 매각하기로 했고 포스코는 재무구조가 악화돼 신용등급이 떨어지자 보유하고 있는 타사 지분과 비핵심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국내외 경기회복이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오히려 철강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들과 세제개편 및 환경규제 강화로 철강업계는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일환 철강협회 상근부회장은 "최근 전기요금 인상과 함께 유연탄에 대한 개별소비세 과세, 탄소세 등 많은 과세법안들이 추진 또는 검토되는 등 각종 환경규제 강화 법안들까지 쏟아지고 있다"며 "각종 법안들이 제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통과된다면 철강업계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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