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방송통신위의 무리수


'종합유선방송 사업자가 지상파방송 신호를 수신해 이를 가입자에게 동시 재송신하는 것은 단순한 수신보조 행위가 아니며 지상파방송 사업자의 동시중계 방송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저작권법 제85조를 위반한 종합유선 방송사업자에 대해 지난 7월2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의 핵심 논지다. 1심 판결 이후 오히려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민감한 현안에 대해 사법부가 정리된 판결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가 동시중계 방송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지상파방송 재송신제도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려진 판결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지상파 재송신은 계약자유 침해 방통위는 1심 판결 이후 지상파방송사의 동시중계 방송권이 인정될 경우 1,500만명의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 가입자들이 지상파방송을 시청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종합유선방송 사업자의 주장에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했다. 이용요금도 비슷한 위성방송과 IPTV라는 대체 서비스 상품이 존재하는데도 방통위가 굳이 지상파방송 사업자의 권리행사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섰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종합유선방송 사업자의 유료방송 가입자 점유율을 안정적으로 보호해주고자 하는 것이라면 혹시 모르겠다. 그 속내야 어찌 됐건 방통위는 어떻게든 종합유선방송 가입자들이 유료방송 서비스 변경 없이도 지상파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실행할 태세다.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는 모든 지상파방송을 의무 재송신 대상으로 한다는 방안이다. 다만 KBS2 채널ㆍMBCㆍSBSㆍ지역민영방송에 대해서는 저작권 대가 산정을 인정하겠다고 한다. 또 다른 방안도 제시됐다. 향후 수신료 인상을 통해 KBS의 광고방송을 폐지할 경우 KBS2 채널에 대해서도 동시중계 방송권 적용 배제를 입법화한다는 방침이다. 법리적 관점에서 주목되는 바는 방통위가 제시한 방법이 우리 헌법질서 속에서 허용되는 것인지, 바람직한 것인지 여부다. 우리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은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보장한다.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내용 가운데 하나로 보장되는 것이 사적 자치의 원칙인데 법률행위의 영역에서 이러한 사적 자치의 원칙은 계약자유의 원칙으로 나타난다. 계약의 내용, 이행의 상대방 및 방법의 변경뿐만 아니라 계약 자체의 이전ㆍ폐기도 당사자 자신의 의사로 결정하는 자유를 말한다. 그런데 방통위가 모든 지상파방송을 의무 재송신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이 같은 계약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까지 동시중계 방송권에 대한 이용허락 계약이 국가권력에 의해 강요되는 까닭이다. 물론 현행 방송법에서 KBS1 채널과 EBS의 경우 현재 동시중계 방송권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나머지 지상파방송에 대해서도 동시중계 방송권 행사에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정치적 상상력 소모 말아야 그렇지만 이 같은 반론은 KBSㆍEBS의 경우 MBCㆍSBS 등 사법인과 동일한 기본권 행위능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 특히 경제적 행위에 있어서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법리적으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같은 관점에서 광고방송 폐지를 조건으로 KBS2 채널에 대해서도 동시중계 방송권 적용배제를 입법화한다는 방안 역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찾기 어렵다. 광고방송 여부가 동시중계 방송권 행사에 대한 제한과 어떠한 논리적 관계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통위는 스스로를 마치 계란을 깨서 탁자 위에 세워놓는 콜럼버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법부는 지상파방송 사업자를 권리주체로 인정했고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권리행사 여부 결정은 물론 계약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지상파방송 사업자의 자유라고 우리 헌법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방통위는 허용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방향으로 정치적 상상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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