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中華제국주의 부추긴 삼국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설은 '삼국지'일 것이다. 13억 인구의 중국보다도 5,000만 인구의 우리나라에서 어찌하여 '삼국지'가 더 많이 읽힐까. 우리나라 소설 중에서 '삼국지'를 능가할 만큼 재미있는 작품이 없는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 까닭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표적 작가들도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삼국지'를 펴낸 것이 아닌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얼마나 우리 역사를 천대했으면 유비·관우·장비는 잘 알아도 을지문덕·연개소문·계백은 잘 모르게 됐을까. 또한 제갈량·조조·손권·조자룡·마초는 잘 알아도 부분노·명림답부·석우로·김문노·흑치상지·고선지는 잘 모르게 됐는가. 젊은이들 역사의식 좌지우지 오죽하면 중국 학자들도 한국 젊은이들이 정작 한국사 실력은 별로 없으면서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과 지명은 훤한 데 놀라고 있다. 중국의 '삼국지'는 잘 알아도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잘 모르니 이런 얼빠진 일이 다 있을까. 물론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삼국지'를 읽더라도 그것이 우리 젊은이들의 역사의식을 좌우하는 길잡이가 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본다. 첫째 위ㆍ촉ㆍ오 중국의 삼국은 모두 합해서 60년도 못 간 단명한 나라였다. 위나라 46년, 촉나라 43년, 오나라 59년으로 중국 25사 가운데 단명한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에 기록도 많지 않고 또 중국인들도 별로 자랑스러운 역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미래의 주인공이 될 젊은이들이 천년사직을 자랑하는 신라와 700년의 고구려와 백제가 아닌 50년짜리 단명 국가들이 싸우는 '삼국지'에 열광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둘째 '삼국지'의 내용은 배울 것이 없다. 전쟁과 권모술수로 이어진 '삼국지'에 빠져들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는 것은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중국에는 '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少不看水滸 老不看三國)'는 경구가 있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수호지를 읽고 강도가 될까 봐 겁나고 나이 들어 '삼국지'를 읽으면 더욱 음흉하고 교활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셋째 '삼국지'에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다.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아마도 제갈량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의 실력은 별것이 아니다. 자기 나라가 60년도 못 가 망할 것조차 예견하지 못했다. '후한서' '진서' '위서' 등 정사에 따르면 제갈량은 유비가 죽기 전까지 군권을 장악하지도 못했다. 소설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위나라 사마의를 몇 차례나 죽을 고비에 빠뜨리지만 이 역시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또 삼고초려를 한 유비에게 제시했다는 천하삼분지계도 '삼국지'에서 무능한 인물로 묘사된 오나라의 노숙이 손권에게 제시한 계책이었다. 또한 유비도 인내심이 깊고 너그러운 인물이 아니며 친아들 유선의 왕위계승을 위해 양아들인 유봉을 죽이고 처자식을 언제든지 갈아입을 수 있는 의복에 비유하는 등 냉혈한이었다. 이처럼 '삼국지'에 빠지면 권모술수에 능한 기회주의자가 되기 십상이다. 더 큰 문제는 '삼국지'를 좋아하다 보면 우리 역사는 소홀히 하고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삼국지'는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을 중화주의자ㆍ사대주의자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책이다. 권모술수·사대주의 불러 일으켜 또 소설 '삼국지'는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는 역사적으로 다른 부분도 많은 그야말로 소설이다. 이를 일일이 밝힌 책까지 나올 정도이니 소설 '삼국지'는 말하자면 역사적 사실을 왜곡 날조한 사극 드라마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결국 '삼국지'는 유비나 제갈공명을 배출한 중국이 위대한 나라라는 인식을 주입함으로써 중화제국주의 오염을 주변국에 퍼뜨리고 있다. 이처럼 창작도 아닌 번역 '삼국지'나 '초한지'를 써서 중화제국주의ㆍ중화사대주의를 부추기는 일부 몰지각한 작가가 횡재를 하듯 떼돈을 벌고 유명세를 타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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