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민간주도,정부선 지원만(인터넷 교역시대)

◎규제일변도땐 의욕만 꺾어/기존관행·마인드 수술시급세계 무역질서에 「인터넷라운드」까지 몰고 올 인터넷 전자상거래에 대한 우리와 선진국의 대처방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은 대통령이 몸소 나섰다. 빌 클린턴대통령이 지난 1일 천명한 「세계 전자무역체제 추진을 위한 종합대책」은 정보통신이 패권을 좌우할 21세기에 「강한 미국」을 만들겠다는 미래 국가전략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외국동향과 민간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는 정보통신부 관계자의 말대로 아직 「판단자료」를 모으는 단계다. 「전자상거래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통상산업부는 이보다 한걸음 더 나간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민간의 비판은 가혹하다. 데이콤의 박재천 상무(정보통신부문장)는 『전자상거래에 관한 세계적인 추세는 정부가 결코 개입해선 안된다는 것』이라며 『규제의 홍수를 낳을 법부터 먼저 만들려는 발상을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옛날 버릇 나온다」는 뜻이다. 민간은 전자상거래시대가 온다는 것을 후각과 촉각, 본능으로 느낀다. 반면 정부는 전자상거래를 국내경제순환에 수용할 것인지, 수용한다면 어디까지 또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과 의지를 아직 확고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는 우리의 전자상거래산업이 선진국권의 꼴찌에 속하는 현실로 나타난다. 인터넷에 개설된 가상상점이 미국 25만개, 일본 4천여개인데 비해 우리는 4∼5개에 불과하다. 이같이 현저한 격차는 따지고 보면 분위기탓이다. 「우리도 전자상거래로 간다」고 민간이 확신할 만한 정부쪽의 비전 제시가 없었다. 때문에 민간은 방향감각이 없고 리스크가 너무 커 보인다. 미국·일본·EU(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이 전자상거래 정책에 대해 취하는 공통점은 이렇다. 정부는 대형 프로젝트를 설정, 「멍석」을 펴주고 기업은 그 위에서 전자상거래에 관해 활발하게 연구·토론한다. 미국의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주정부가 투자하여 만든 「커머스넷」은 새로운 전자상거래방식을 시험하고, 국제표준안 제정을 주도한다. 옛날 같으면 정부가 직접 할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돈만 댄 다음 지켜본다. 일본 우정성과 통산성도 「민간 주도, 정부 예산지원」이 철칙이다. 우리나라에도 전자상거래와 유사한 프로젝트는 있다. 정통부가 추진하는 정부조달부문의 EDI(전자문서교환)시스템 구축계획이다. 이는 정부와 납품기업간의 상하수직 거래에 국한된다. 네트워크도 일반인과는 무관한 초고속국가망이다. 전자상거래를 수용하지 못하는 제도와 관행, 마인드, 사회시스템을 시급히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면 싸질 수밖에 없다. 점포가 필요없고 중간 유통과정이 대폭 생략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현행 공정거래법상 판매업자는 「일물일가」의 원칙을 적용받는다. 같은 물건을 백화점과 인터넷 쇼핑몰 양쪽에서 팔려면 가격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고수하면 전자상거래가 존립할 수 없다. 안심하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수 있게 하는 보안문제의 해결은 대단히 중요하다. 한솔CSN의 이영호과장은 『정보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면 아무도 사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허진호 아이네트사장의 지적은 색다르다. 『보안, 전자결제 등 기술상의 걸림돌은 곧 해결된다. 정작 큰 문제는 수백년의 시행착오끝에 이제는 완벽해진 기존 상거래·무역시스템을 상당부분 포기해야 하는 「마인드」에 있다. 예컨대 현 신용장·결제·수송·통관·보험·분쟁조정 등의 제도는 거의 완전무결하다. 그러나 인터넷 전자상거래, 인터넷 무역이라는 메가트렌드 앞에서는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세계경제가 「인터넷 라운드」에 직면할 날이 곧 다가온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예측이다. 인터넷 상거래시대가 불가피하다고 인식한다면, 우리는 이미 출발이 늦었다.<이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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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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