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뉴욕증시 폭락] "먹을만큼 먹었다" 조정전 손빼기

20일 뉴욕 증시를 어둡게할 악재는 거의 없었다. 미국 최대 기업인 제너럴 모터스(GM)는 이날 2·4분기 수익이 주당 2달러 66센트로 한해전보다 5배로 불어났다. 유가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는 소식에 모처럼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루슨트테크놀로지등 하이테크 업종의 분기 순이익은 어느때보다 좋게 나타났다.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이날 뉴욕증시는 폭락했다. 이만큼 배가 불렀으니 그만 먹겠다는 심리가 이심전심으로 전해졌고, 투자자들은 패닉 현상을 보이며 주식을 팔아제꼈다. 수익이 좋은 회사의 주식일수록 낙폭이 컸다. 올들어 증시가 20% 이상 상승했으니, 연말에 올라도 소폭에 그칠 것이고, 큰 조정이 있기 전에 손을 빼겠다는 작전이 한꺼번에 진행된 것이다. 주가폭락을 선도한 종목은 기술주였다. 기술주가 집중된 나스닥 지수는 90.07 포인트(3.5%) 급락, 2,732.22포인트에 마감했다. 지난 4월19일 이후 최대의 하락폭이었다. 블루칩 종목인 다우존스 지수도 191.55 포인트(1.71%)가 떨어진 1만996.13로 마감했으며 S&P 500지수는 30.55 포인트(2.2%)가 떨어진 1,377.10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폭락의 주원인은 투자자들이 대량의 치고빠지기 수법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들은 『3분기에도 기업 수익이 좋게 나올텐데 펀드매니저들이 이쯤하면 되겠다는 심리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 돈을 주무르는 매니저들은 「공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IBM의 경우 2분기 수익이 24억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65%나 급증해, 전문가들의 기대를 훨씬 초과달성했다. 평가회사들은 앞으로도 IBM의 수익이 좋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지만 투자자들은 IBM 주식을 투매, 주가를 5% 가까이 떨어뜨렸다. 이미 주가에 현재의 수익이 반영돼 있고, 앞으로 이만한 수익을 기대할수 없다고들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나 루슨트테크놀로지, 존슨 앤드 존스과 같은 주도주들도 모두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루머에 사고, 사실이 확인되면 팔아라」는 증시 격언을 트레이더들은 실천했다. 뉴욕 증시는 지난달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0.25% 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단행한후 더이상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최고를 기록하며 상승했다. 이른바 「서머 랠리」였다. 펀드매니저들이 여름 휴가를 가기 전에 대거 주식시장에 투자해두는 연중 행사에다 기업 수익율 호전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 불식등의 요인이 증시 상승을 부채질했다. 매니저들 사이에는 『이젠 떨어질때도 됐다』는 심리가 팽배해졌다. 기업들이 2분기 수익이 너무 좋게 나타났고, 3분기 수익이 이보다 좋을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올여름에는 컴퓨터 2000년 인식문제(Y2K)로 인한 주가 하락을 예언하는 사람도 있다. 오는 22일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이 하원 증언에서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는 터에 과속 열차를 더이상 탈수 없다는 얘기다. 증시에서 빠져나온 돈은 대거 채권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채권은 수익성이 낮지만 안전한 피신처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미 재무부채권(TB) 30년물은 1,000 달러당 1.88 달러 올랐고, 수익율은 2BP(0.02%) 하락했다. 거래량이 가장 많은 TB 2년물은 5BP(0.05%) 급락했다. 월가 투자자들은 뉴욕증시뿐 아니라 한국등 이머징 마켓에서도 빠져나오려 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투자자들이 이머징 마켓, 특히 한국 증시가 올들어 너무 달아올랐기 때문에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HSBC 은행의 이머징 마켓 투자전략가인 벤 루드씨는 『구조조정의 명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날 하락은 지난해 여름 러시아 위기 이후 유발됐던 것과 같은 대조정의 전주곡은 아니지만, 뉴욕 증시가 하반기에 큰폭으로 오르지 못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뉴욕=김인영 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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