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한미FTA와 고르디우스의 매듭


"여야, 도농, 온건ㆍ강경파에 따라 입장이 엇갈리고 예산안 처리가 연계돼 있고 내년 총선(4월)도 코앞이지 않습니까." 정치권의 극한 대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가 안갯 속인 가운데, 여야를 떠나 적지 않은 의원들은 물리력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단독처리는 힘들다고 고백한다. 여당 의원(169명) 중에서 농촌 의원과 쇄신파, 지난해 말 물리력 행사 거부 선언파 등을 감안하면 추진동력이 크지 않고 지난해 말 예산안을 힘으로 밀어붙일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럴듯한 고백이다. 민주당은 김진표 원내대표 등 온건 협상파까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해 '협정 발효 즉시 재협의'라는 미국 측의 공식약속이 없으면 18대 국회 처리를 막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야권 대통합을 의식해 19대 국회 재논의를 주장하는 손학규 대표 등 강경파는 말할 것도 없다. 여야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명분축적을 위한 정치공방에만 치중하는 통에 한미 FTA가 복잡하게 얽히고 ?霞?표류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기자에게 "현 상태에서는 단독처리를 하려 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놨을까. 그렇다고 한미 FTA의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협상파의 말대로 정부가 미국과 교섭에 나서보는 거다. 실제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달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발효 후 3개월 내 ISD 투명성 제고 등 서비스ㆍ투자위원회 가동'에 합의한 만큼, 거기서 좀 더 진전시켜 야권 온건파들에게 명분을 준다면 모처럼 국민에게 타협의 정치를 선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민주당 협상파가 ISD 완전 폐기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법ㆍ제도ㆍ관행ㆍ공공정책에 걸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한미 FTA의 효과와 영향을 다각적으로 점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프리지아의 왕 고르디우스가 신전에 마차를 묶은 매듭을 푸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했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단칼에 잘라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풀어냈다. ISD라는 매듭을 푸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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