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진흥을 위한 행정 체제 일원화의 필요성이 부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원화 노력이 무산된 채 수십년간 비효율과 예산 낭비 등 병폐가 지속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산업은 지난 1959년 원자력청의 설립과 함께 원자력 행정이 태동되기 시작해 오늘날 세계 수준의 원자력 사업을 일으키는 토대를 닦았다. 6ㆍ25 이후 척박하던 시기에 원자력청에서는 인력 양성은 물론이고 조기에 원전 도입을 계획하고 과감하게 추진해 1978년 국내 최초로 고리원자력발전소 가동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21번째 원전 보유국이 됐다.
이후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원전 건설을 추진해 현재 23기, 총 2만716㎿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세계 5위의 원전국가로 발돋움하게 됐다.
행정체제 이원화는 중복 투자
문제는 이처럼 원자력 산업의 눈부신 발전과는 달리 원자력 진흥을 위한 행정 체제는 이원화된 상태가 지속됨으로써 여러 가지 비효율과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에서도 원자력 행정 체제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로 나뉘어져 원자력 진흥 정책 기능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예컨대 교과부는 원자력 정책과 연구개발, 안전 관리를 맡고 지경부는 에너지 정책과 발전 사업 관리를 담당하는 이중적인 구조가 지속됐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전 건설과 기술 자립, 원전 연료 국산화 문제, 방사성폐기물 관리, 신형 원전 개발 등 각 분야에서 혼란과 갈등이 지속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교과부의 원자력 진흥 종합계획은 사실상 원자력 연구원 위주의 연구개발(R&D) 계획으로 전락한 측면이 강하고 또 원자력 산업계는 연구계의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자체적인 기술 개발 능력을 확보하느라 중복 투자가 발생하는 등 예산 낭비와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늦게 출발했지만 기술 개발과 원전 건설 등 각 분야에서 피나는 노력을 거듭한 끝에 단기간에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2009년 12월27일 세계 원전 시장을 독점해온 프랑스와 미국을 제치고 일거에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 4기를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는 데 성공해 원전 수출국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미국과 프랑스ㆍ일본 등 원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국내 원전의 기술 수준 및 운영 능력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것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다. 이 같은 여세를 몰아 원전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원자력 R&D와 원자력 산업이 똘똘 뭉쳐 여러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시대적 과제인 셈이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원전 수출 시대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원자력 산업 지원 체제를 조기에 구축해 수출 체제로 전환하고 마케팅 전략과 미자립 기술의 조기 자립화 등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해묵은 숙제 해결할 절호의 기회
원자력 행정 체제 일원화는 정부의 조직 개편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거론돼왔을 뿐 아니라 원자력계의 해묵은 숙제이기도 하다. 지난해 원자력 안전 규제의 독립성 확보는 국제적 추세에 부응하는 매우 바람직한 결과로 보여지며 이제는 원자력 진흥 정책을 일원화함으로써 행정 효율을 극대화해야 할 시점인 것으로 판단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이 원자력 행정 체제 일원화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부처 이기주의 등에서 벗어나 원전을 비롯한 원자력 산업이 국가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 체제의 정비 및 일원화에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