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버려진 문자들로 되살린 옛 향수

잭 피어슨 국내 첫 개인전

선인들은 글씨가 인격을 드러내는 '사람 그 자체'라고 하여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고유의 글씨보다 기계를 통한 '글자체'가 더 익숙하다. 글과 문자의 '실존'을 파고 든 미국작가 잭 피어슨(50)의 국내 첫 개인전이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막을 올렸다. 전시는 6월 6일까지 열린다. 사진ㆍ설치ㆍ조각까지 넘나드는 피어슨은 이번 전시에서 버려진 광고판이나 고물상 등에서 주운 알파벳 조각들을 조합해 단어나 문장을 만드는 '문자 조각' 작업을 선보였다. 출처와 서체가 다르고, 소재와 크기도 다양한 알파벳 조합은 마치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남의 글씨를 짜맞춰 쓴 협박편지를 연상케 한다. 피어슨은 직접 문자를 만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서 사용했던 것만을 조합한다. 일례로 'Desperate?(급하십니까?)'에 사용할 물음표를 찾아 작품 완성에 수년이 걸렸다. 재료를 찾기 위해 여행지부터 노숙자 쉼터의 쓰레기더미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간단한 단어와 문구에는 긴 사연이 담겨 있다. 작품 'My Sin(나의 죄)'의 'S'는 구불거리는 뱀의 형태다. 사람이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원죄(Sin)를 갖게 됐음을 드러낸다. 'Old hollywood movies'는 실제 영화관 간판에서 떼어낸 알파벳 조각들로 옛 시절의 향수가 배어있다. 한 때 눈길을 끌었으나 지금은 버려진 문구들은 작품으로 환생해 이처럼 빛 바랜 화려함, 잊혀져 가는 사랑에 대한 향수, 명성에 대한 갈망을 암시한다. 1984년 뉴욕 42번가에서 실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도시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영화관이나 상점들이 다시 태어나는 시기라 버려지는 것들이 많았고 버려진 것들을 주워다 다시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흘려보기 쉬운 문구들이지만 낡은 알파벳 조각과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관람하면 좋겠다"고 권했다. 피어슨은 패션사진가로도 유명하며 그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02) 733-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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