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비정규직에 '희망의 징검다리'를


채호일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 “근로자는 약하다. 따라서 정당한 보호가 필요하다.” 이것은 노동법의 대명제다. 그 방법의 하나는 법률로 근로자를 직접 보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근로자가 단결해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개선해 나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오늘날 비정규직에도 이러한 노동법 원리가 통용되는가. 근로자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비정규직이 사용자와 정규직 사이에서 어떤 법적 보호를 받고 있는가. 노동법은 초창기 모든 근로자는 동등하다는 전제 아래 사용자와의 관계만을 규정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일자리와 임금 등 근로조건을 두고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러한 노노(勞勞)관계의 실체를 외면하고서는 결코 공정한 노동법을 기대할 수 없다. 양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규직 전환이나 임금인상 문제 등에 대해서는 사용자규제 방식의 전통적 노동법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여기에는 노노 간 경쟁관계를 공정하게 반영하는 새로운 노동법 질서가 요구된다. 비정규직의 취약성은 고용불안정에 있으므로 개별 교섭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러한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복수노조와 단체교섭권이다. 산업화 초기 자본과 노동의 충돌과 힘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20세기 노동법’이 탄생했다면,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21세기 노동법’이 요구된다. 비정규직이 또 하나의 사회적 신분으로 고착되지 않도록 탈출구를 열어주는 노동법의 기능이 절실하다. 그 길만이 비정규직이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함정(Trap)’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가는 희망의 ‘징검다리(Bridge)’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용 유연성과 고용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이라도 언젠가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만큼 심각하지 않은 것은 비정규직이라도 노조활동과 단체교섭에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차별시정을 포함한 비정규직 문제도 노사ㆍ노노간 협약자치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다. 비정규직 대표가 교섭테이블에 앉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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