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9월 18일] 드골·박정희 그리고 과학기술 리더십

프랑스 남부의 한적한 시골도시 카다라슈에 '샤토 드 카다라슈'라는 고성(古城)이 있다. 프랑스 원자력청(CEA)은 지난 1959년 고성 인근에 대규모 연구소를 지으면서 게스트 하우스로 쓰기 위해 이 고성을 매입했다. 이곳 투숙객 중에는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상처 입은 국가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독자적인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드골 전 대통령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원자력청을 설치하고 전국 곳곳에 원자력 연구소를 지었다. 카다라슈 연구소도 그 중 하나다. 드골 전 대통령은 11년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고성에서 묵었다. 연구소 인근에 건설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취재하기 위해 카다라슈를 방문한 기자는 운 좋게 이 고성에서 묵었다. 드골이 잤던 방은 33㎡(10평) 남짓했다. 이 낡고 작은 방에서 그는 '위대한 프랑스의 재건'을 꿈꿨을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가 원자력뿐 아니라 고속철도ㆍ항공기ㆍ우주발사체 등 과학기술산업 전분야에 걸쳐 강대국이 된 것은 드골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기자가 '드골 룸'을 둘러보면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미국이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보상으로 한국에 필요한 것을 주고 싶다고 제의하자 박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지만 '기술입국'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끌어낸 지도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요즘 과학기술계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예산 편성ㆍ집행권을 가진 독립행정부처로 격상시키는 문제로 설왕설래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과학기술부가 교육인적자원부에 통폐합되면서 과학기술계는 큰 박탈감을 느꼈다. 정부 역시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비판에 계속 시달렸다. 국과위의 위상 강화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되지만 과학기술계가 정작 바라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최고통치권자의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과 먼 미래를 내다보는 리더십이다. 카다라슈가 ITER 입주로 국제 핵융합 연구의 메카로 떠오른 것은 50년 전 드골 전 대통령이 라벤더와 해바라기로 뒤덮여 있던 시골에 원자력 에너지 연구라는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최대 과학 프로젝트'라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세종시와 엮여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과학기술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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