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주에 설치된 초고속인터넷망이나 유선방송망 등의 통신설비를 지중화하는 데 드는 비용을 누가 분담하느냐를 놓고 지자체와 통신업체들이 갈등을 빚는 가운데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놓아 주목된다. 서울시에만도 2,000억여원의 지중화 예산이 들어간 상황이고 전국적으로는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법원의 최종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장상균 부장판사)는 최근 LG텔레콤(통합 전 ㈜엘지파워콤) 등 4개 통신업체가 "지중화 사업 비용을 통신업체 측에 부과하는 것은 위법하다"며 서울시 동작구를 상대로 낸 이설비부담금부과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변현철 부장판사)는 지난 1월13일 "통신업체가 이전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행정법원 재판부는 통신업체가 적법한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아 사실상의 '무허가 첨가물'이기 때문에 이전비용 부과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통신업체들은 전신주를 점용한 한국전력과 배전설비 협정을 맺어 통신선로를 설치했을 뿐 지자체의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는 않았다"며 "동작구가 지중화공사비 전액을 도로 무단점용자에 해당하는 통신업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로 업체 측에 14억여원의 이설비부담금을 부과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는 처분으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는 통신업체에 대한 지자체의 이설비부담금 부과가 법적으로 근거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만큼 통신업체에 유리한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앞서 민사법정은 무단점용자인 통신업체가 이전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월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변현철 부장판사)는 SK브로드밴드 등 6개 통신업체가 "지중화 사업으로 인한 통신설비 이전비용 60억여원은 구청이 부담해야 한다"며 강남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도로점용 허가 없는 무단점용자가 이전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통신업체 측은 한전과 협약을 체결했을 뿐 구청으로부터는 별도로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점용물 이전 등에 대한 비용은 무단점용자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설비 부담주체는 민사소송을 통해 최종 결정되겠지만 통신설비 이전비용을 부과하는 행정조치를 무효라고 판단한 만큼 이후 소송에서 분담비율 등을 놓고 치열한 법리공방이 오갈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 50개 사업지역뿐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전국 차원의 전선지중화 사업에서 통신업체들이 비용을 전액 부담할 수는 없다"며 "애초 비용 문제는 소송으로 해결하기로 한 만큼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중화 비용은 서울서만도 50곳에 2,000억원이 소요되고 전국적으로는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재판 결과에 따라 통신업체의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자 통신설비 지중화 비용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총리실 산하 '공중선제도개선' TF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TF의 한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며 "지자체와 통신업체 간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