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한국의 新人脈] <끝> 연구소, KDI·삼성硏 출신 각계 두루 포진 "대한민국 인재 배출의 산실"

한국개발연구원<br>'MB정부 실세' 사공일·김중수 씨등 배출… 정계선 유승민·진수희·이혜훈 등 맹활약<br>삼성경제연구소<br> 백용호·신지호·민승규·김병기 등 한솥밥… 민간硏 넘어 '국가 싱크탱크'로 자리매김<br>LG硏 출신으론 김주형·이윤호·이원흠 꼽아



대한민국의 싱크탱크인 연구소는 정계ㆍ재계ㆍ학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그 자체로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사실 연구소 조직만 놓고 보면 특정 대학 혹은 지역 출신이라는 인맥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미국 시카고대 등 해외 유학파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유럽이나 일본, 혹은 국내 대학 출신 박사도 상당수 자리하고 있다. 전공 역시 경제ㆍ경영학을 넘어 산업ㆍ공학 등 다양하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시장주의자가 대체로 많기는 하지만 특별한 학풍을 요구하거나 딱히 방향성이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핵심 브레인 공급의 산실'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사정은 확연히 달라진다. 주요 국책 및 민간 연구소의 인재들이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뿌리를 내리면서 연구소 자체가 인맥 형성의 메카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연구소 내에 인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 자체가 인맥인 셈이다. 이들 연구소는 주요 연구자들이 해당 분야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특정 연구소 출신은 이미 실력이 검증됐다는 '보증 수표'와 같다. 특히 이들 연구자의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끈끈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인재 배출의 산출, KDI=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0년 역사와 함께 학계ㆍ경제계ㆍ정계 등에 인재를 배출하는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구소라는 명성에 걸맞게 사회 각 분야로의 진출도 활발하다. 가장 인적 교류가 활발한 곳은 관가다. KDI에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조언하는 역할을 하다 자연스럽게 관으로 자리를 옮긴 인사가 많다. 반대로 공무원으로 시작해 KDI로 옮겨 중요 보직을 맡은 사람도 꽤 된다. 우선 자타가 공인하는 MB정부의 실세인 사공일 무역협회 회장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를 꼽을 수 있다. 사공일 회장은 지난 1973년 KDI 수석연구원, 1982년 부원장을 거쳐 1987년 재무부 장관, 1989년 국제통화기금(IMF) 특별고문을 역임했다. 2007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 2008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2009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무협회장을 맡으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김중수 총재도 KDI 출신이다. 그는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연구위원ㆍ연구조정실장ㆍ선임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뒤 KDI 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장(1991~1993년)과 제11대 원장을 맡았다. 역시 MB정부의 핵심 인물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KDI 연구위원을 지냈다. 양수길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도 1981년부터 1993년까지 KDI에 적을 뒀고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1998∼2004년 KDI 국제대학원 교수 출신이다. 현정택 지식경제부 무역위원회 위원장은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2005~2009년 제12대 KDI 원장을 지냈다. 현오석 현 KDI원장도 재경부 예산심의관, 경제정책국장, 국고국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우리은행장과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이덕훈 서강대 교수 역시 KDI 연구위원 출신이다. KDI 출신은 정치권에서도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KDI를 거쳐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에서 활동하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케이스가 보편적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다. 유 최고위원은 KDI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다 2000년 2월 이회창 총재에 의해 여의도 연구소장으로 영입돼 정계에 입문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도 KDI 연구원에서 여의도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연구위원ㆍ선임연구위원ㆍ연구소장 등을 맡았다.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KDI 연구위원에 이어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은 케이스다. 유일호 의원은 조세연구원 원장 및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출신이다. 민주당에서는 강봉균 의원이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정보통신부 차관,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맡은 뒤 2001년 제10대 KDI원장을 지냈다. ◇민간 최고의 싱크탱크, 삼성연=영어 약자인 '세리'라고도 불리는 삼성경제연구소는 출범 25년째를 맞아 민간 연구소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정책 브레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는 민감한 경제 이슈나 특정 산업의 트렌드에 대해 국책연구기관보다 앞서 삼성연이 보고서를 발표하는 것이 익숙해질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삼성연을 거친 인재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백 실장은 삼성연 객원 연구위원 출신으로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등을 역임하면서 MB노믹스 전파를 담당했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은 일본 게이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북한 전공)를 받고 돌아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삼성연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신 의원의 경우 이후 KDI 초빙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MB정부에서 청와대로 진출한 케이스도 많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연 문화산업담당 수석연구원을 지낸 고(故) 김휴종 대통령실 문화예술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문화분야 공약을 설계했다. 민승규 농촌진흥청장은 1995년부터 삼성연 정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활동하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농수산식품비서관,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등을 거쳤다. 민 청장의 후임으로 청와대 농수산비서관을 맡고 있는 남양호 비서관도 삼성연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청와대 농수산분야 싱크탱크는 삼성연 출신이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외에 김병기 서울보증보험 사장은 행정고시 16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부 국고국장ㆍ금융정보분석원장 등 29년간 공무원 생활을 한 뒤 2005년부터 4년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을 맡았다. 부산의 싱크탱크인 부산발전연구원 이언오 원장은 삼성연 공공정책실 전무를 지냈으며 2005년에는 국가정보원 국가정보관에 채용돼 2년 동안 근무했다. ◇그룹 경영 브레인 역할도=삼성연이나 LG경제연구원 등 민간연구소는 해당 그룹의 경영 전략을 짜고 장기 밑그림을 그리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경영 전략을 조언하다 직접 관리자로 정착하거나 몇 년간 외도하는 케이스다. LG연은 실무적인 경기 동향과 전망에 집중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김주형 LG연 원장은 현재 LG생명과학 이사를 맡고 있고 2006년에는 LG그룹 경영관리팀 부사장으로 활동했다. 정일재 LG생명과학 사장은 LG연 연구위원으로 입사해 경영컨설팅센터장 등을 역임한 뒤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사장을 맡았다. LG연 출신 주요 인사로는 이윤호 주러시아대사를 꼽을 수 있다. 이 대사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3년간 LG연 원장을 맡았으며 지식경제부 장관 등을 거쳤다. 또 이원흠 홍익대 교수는 LG연 금융재무센터 센터장과 LG투신 운용본부장 등을 지냈다. 정진하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우정경영연구소장도 LG연 출신이다. KDI 원장 출신으로 주요 대선후보 경제정책을 조언했던 차동세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도 LG경영개발원 대표를 지냈다. 삼성그룹의 경우 대표적인 경영혁신 전문가인 윤순봉 삼성석유화학 사장이 삼성연 연구조정실장(부소장) 출신이다. 윤 사장은 1991년부터 삼성연에서 경영혁신연구실장ㆍ신경영연구실장 등으로 일했다. 정기영 현 삼성연 소장은 삼성생명 경영전략실장 부사장 및 삼성금융연구소장 부사장을 역임했고 이범일 삼성연 지식경영실장(부사장)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전략기획실 전무를 지냈다. 김재윤 기술산업실장은 삼성전자에 입사해 삼성연 기술산업실에서 뿌리를 내린 사례다. 서울경제신문 기자 출신인 최우석 삼성연 2대 소장은 현재 삼성전자 상담역을 맡고 있다. 이 외에 박우규 SK경영경제연구소 소장도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 부사장으로 회사 경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국책연구소 출신의 한 인사는 "주요 연구원은 보고서나 정책 제언 등으로 이름을 떨치다 대부분 스카우트 형식으로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다"며 "연구소 시절 자주 만나 같은 주제를 놓고 고민하다 보니 다른 연구원 출신과도 끈끈한 네크워크를 유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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