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60만 재일동포 오늘:3(한민족경제권이 떠오른다)

◎사업체수 2만여개… “뿌리 튼튼”「한민족 경제권은 우리가 일군다」 일본지역내 한민족 경제권 규모는 재일한국상공회의소의 공식통계로도 사업체수가 1만개를 넘어섰다. 여기에 조총련계와 비등록사업체수까지 합하면 기업수가 줄잡아 2만개를 웃돌만큼 한민족 경제권은 튼튼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땅에서 온갖 어려움을 딛고 뿌리내리기에 성공한 대표 기업인들을 소개한다.<편집자주> ◎마론사 김복남 사장/“2세 기업가의 기수”로 꼽혀/취임 5년… 연매출 400억엔 일본 굴지의 합성피혁 메이커인 마론사의 김복남 사장(45). 그는 일본내 한민족 사회에서는 「2세 기업가」의 기수로 꼽힌다. 5년전 선친이 이끌던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일선에 나선 김사장은 취임 5년만에 마론사를 종업원 9백명, 연매출 4백억엔까지 끌어올려 서부일본 제일의 알짜배기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마론사가 만든 비닐 우의는 일본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물류·부동산·건축·의료 등 19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모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대만 등 해외 4개국에도 생산시설을 갖추는 등 「세계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의 부친인 김종수 마론사 회장(74)은 경북 청도 출생으로 9살때 도일, 51년 종업원 6명으로 공영비닐공업을 창업해 회사를 일으킨 자수성가형 기업인. 63년 일본의 대한경제지원정책 1호로 울산에 PVC공장을 설립, 모국의 화학공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평산운수 권병우 회장/한민족 사업가 ‘대모’격 인물/동포 여성 첫 무궁화훈장도 권병우 평산운수 회장(72)은 일본내 한민족 사업가들 사이에서 「대모」로 불리는 인물. 지난 95년 재일동포 사회에 기여한 공로로 동포여성중 처음 무궁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4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 운수사업을 맡게된 권회장은 사업보다 여성사회활동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58년 재일동포부인회 활동에 뛰어든 권회장은 재일부인회 중앙본부회장과 민단 중앙본부 부단장등 굵직한 자리를 맡으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모국에도 이방자 여사의 자행회, 전몰군경미망인협회 등에 대한 지원은 물론 고향인 경북 영덕군에 우학장학회를 설립, 지역내 많은 학교에 도움을 주었다. 「바람과 코스모스」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의 자서전에 따르면 권회장의 인생사에는 재일동포의 한이 곳곳에 묻어나온다. ◎마루젠(환전)식품 전동 회장/‘김치만들기’ 외길 35년 인생/“신용이 재산” 실천으로 번창 「김치만들기 외길 35년」. 전동 마루젠(환전) 사회장(62)은 23세이던 지난 1961년 김치사업에 뛰어들어 35년 이상을 김치에 매달려온 한민족 최고의 「김치맨」이다. 마루젠사는 현재 하루 배추 6톤을 가공해 10여종의 김치를 생산중이며, 1백여개 가까운 도매상은 물론 오사카 지역의 수퍼마켓과 편의점 등에 납품하고 있다. 특히 마루젠식품이 자랑하는 「마루젠김치」는 일본인들에게도 김치의 톱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마루젠식품이 오늘날 일본 최고의 김치메이커로 자리한 데는 무엇보다 시장확보를 위한 전회장의 눈물겨운 노력이 숨어있다. 시행착오끝에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개발키 위해 나름대로의 비법을 개발한 전회장. 그는 이후 새벽 3시부터 밤 12시까지 자전거로 돌아다니며 시장을 확보해나갔다. 지금도 자신의 첫번째 신조는 「신용이 재산」이라고 강조한다. ◎호남전기 김상호 사장/10개사 거느린 재벌기업가/자동펌프 일내수 70%차지 1923년 4살때 일본에 건너와 고희를 넘긴 김상호 호남전기 사장(74)은 한민족 사업가중 그리 많지않은 「재벌기업가」중 하나다. 김사장이 현재 일본 현지에서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기업만도 제조업·호텔·부동산·무역 등 10개에 이른다. 특히 자동펌프 부문에서는 일본 내수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등 독보적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1964년 한국에 진출해 한일전기를 설립, 펌프의 톱브랜드로 올라섰다. 또 세탁기·오디오 등의 가전제품에서 요트에 이르기까지 10개의 기업을 잇달아 만들어내 이제는 한일 양국에 2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재벌」로 성장했다. 해방직후 연료가 부족했던 일본에서 장작 파는 일로 사업을 시작한 김사장은 이후 유리공장을 세워 한때 재미를 보았으나 거래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함께 파산하고 말았다. 이후 철판을 가공하는 금원상점을 세우는 등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된다. ◎아이리스오야마 조용세 사장/작년 매출 500억엔,40% 성장/생산품목 2,700여가지 달해 「아이리스」. 재일동포 2세인 조용세 사장(52)의 가정용플라스틱업체 아이리스오야마사가 만들어내는 제품명이다. 아이리스는 이제 2조5천억엔을 상회하는 일본 홈센터시장을 2%이상 점유중이다. 지난해 매출액만 5백억엔, 종업원 1천7백명, 5개공장에 60개의 영업소,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 40% 등…. 생산품목도 다양하다. 이 회사의 첫 히트작품인 플라스틱화분에서부터 여행용가방 등은 물론, 고양이 용변기에 이르기까지 생산품목이 무려 2천7백여가지에 달한다. 조사장의 성공비결은 어찌보면 간단하다. 한때 일본 메스컴을 떠들석하게했던 소위 「메이커벤더」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물류혁명」으로 풀이되는 이 시스템은 소비자를 직접 접촉하는 홈쇼핑 등 최종 소매상과 제조업체가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아이리스는 이 시스템을 통해 판매비용을 최소 30% 이상 줄이는 「가격파괴」에 성공했다. ◎서경병원 김재하 원장/의술로 재일동포 권익보장/정주외국인 참정권에 힘써 교토(경도) 서경병원의 김재하 원장(73)은 의술로써 재일동포의 권익을 신장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이제 일본의 고도인 교토에서 일본인들에게도 존경받는 의사다. 경북 상주출신으로 교토부립 의과대에 유학했다 해방을 맞았다.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당시 민족병원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 졸업후 교토에 임상진료소를 개설했다. 이후 교토대학연구소 등을 거쳤으며, 현재 서경병원외에도 구조병원과 오조병원 등 3개의 병원을 운영중이다. 의료를 통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노력을 기울여 교토부 의사회의 구급위원회 위원장직도 맡고 있다. 일본사회에서의 봉사활동을 인정받은 결과, 김원장은 일본서는 처음으로 교토부와 교토시의회가 동시에 정주외국인 참정권 요망결의를 채택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삼광개발 김인식 회장/모국 어려울때 지원 큰 공로/각 단체 재정고문,기둥 역할 재일동포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한 숨은 공신들일지 모른다. 모국이 어려울 때마다 그들은 각종 수단을 통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보탬이 돼왔다. 김인식 삼광개발회장(71)은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유달리 민족애가 넘치는 인물로 통한다. 금융과 부동산, 레저, 음식점, 고향인 제주도에 오리엔털호텔 등을 소유한 김회장은 『조국에 힘이 있어야 재일동포도 힘이 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88올림픽때는 물론, 고국에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배경도 이런 신념을 바탕에 깔고있다. 민단 일도 열심이다. 민단의 살림살이에도 큰 도움을 주며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돈쓸줄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오사카한일친선협회, 관서제주도민협회, 오사카한국상의, 민단오사카본부 등 재일동포의 권익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재정고문으로 참여해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왔다. ◎관서 제주도민협회 오진성 회장/제주도민 힘모으기에 열성/동포 결혼상담소 설립 추진 일본, 특회 오사카지역에는 유달리 제주출신 인사들이 많다. 제주의 제민일보가 오사카특파원을 별도로 보낼 정도다. 그 때문인지 오진성 관서제주도민협회 회장(69)의 어깨도 누구보다 무겁다. 1928년 제주에서 출생, 10살때 부모를 따라 도일한 오회장은 광서대핵 경제학부를 졸업, 한때 민족학교인 백두학원에서 교원생활도 했다. 이후 53년 자본금 5억엔으로 「화전상점」이라는 가게를 차려 니트와 부인복을 취급하는 사업 일선에 뛰어든 뒤 최근엔 연매출 30억엔을 웃도는 중견사업자로 변신했다. 현재 도민회일에 충실하다보니 자기 사업에는 그다지 신경쓸 겨를이 없을 정도다. 도민회 자체가 발족된지 4년밖에 되지 않은데다 회원수도 7백명 안팎에 그쳐 지역내 제주도민들을 한명이라고 더 끌어들이기위해 불철주야로 노력중이다. 교포끼리의 결혼을 활성화하기 위해 결혼상담소 등을 설립하는게 오회장의 일차 목표다. ◎인터뷰/한창우 재일상의 회장/“빠찡꼬업 쇠퇴속 사업다각화 모색 한민족 더 뭉치면 거대기업 나올것” 『한민족이 빠찡꼬 산업으로 일본의 레저산업을 석권한 것을 보면 일본의 하이테크산업을 점령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일본내 빠찡꼬산업의 대부로 재일한국상공회의소연합회회장을 맡고 있는 한창우 마루한사 사장(66). 그는 재일동포 최대의 사업인 빠찡꼬업이 최근 쇠퇴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한민족은 결국 소프트웨어와 사업다각화를 통해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빠찡꼬사업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일본정부의 단속으로 상당히 쇠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다. 지난 95년 30조엔을 웃돌던 연간 매출이 지난해 20조엔까지 하락했다. 때문에 이제 한민족들도 본격적인 사업구조 변화를 모색중이다. 빠찡꼬업자들 대부분도 소프트웨어쪽으로의 진출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불황인데 자금사정에는 별문제가 없는가. ▲일본의 금융기관들도 이젠 한국인이라고 특별히 돈 빌려 주는데 인색하지 않다. 단지 업종과 수익성에 따른 차별은 있다. ­화교들은 세계 각국에 거대기업을 거느리는 등 엄청난 성장을 거듭중이다. 이와 관련한 한민족의 가능성은. ▲한민족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민족성이다. 한민족은 여전히 뭉치는 데는 인색하다. 중공업부문에서 좀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조금만 뭉쳐 나가면 거대기업의 탄생도 가까운 시일내에 가능할 것이다.<동경=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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