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월 23일] <1602> 왕립증권거래소


1571년 1월23일, 엘리자베스 1세가 증권거래소를 방문해 국왕의 허가증을 내려줬다. 영국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직전 모험상인 집단의 자본축적을 도운 런던 왕립증권거래소(Royal Exchange)가 이렇게 탄생했다. 여왕의 방문 이전에 증권거래소의 이름은 런던 증권거래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남긴 인물인 토머스 그레셤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1565년이 출발점이다. 외교관이자 무역상, 왕실의 재산관리인으로 일하며 영국 최고의 갑부로 올라선 그레셤이 세운 거래소의 원형은 앤트워프 거래소.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던 앤트워프에서 주식과 채권이 활발하게 매매되는 광경을 지켜본 그레셤은 건물을 사들이고 사람을 고용해 거래소를 세웠다. '왕립'이라는 외투를 걸치게 된 증권거래소는 영국의 국위 신장과 함께 커나갔다. 최초의 시련은 화재. 1666년 발생한 런던 대화재 때 건물이 완전히 소실돼 3년이 지나서야 새 건물을 지었다. 막강한 경쟁자도 생겼다. '권위'를 중시한 왕립증권거래소에서 '매너가 나쁘다'는 이유로 출입이 금지된 브로커들은 막 생겨나기 시작한 커피하우스로 옮겨 주식을 사고 팔았다. 자생적으로 탄생한 커피하우스 주식거래는 초고속으로 성장해 1801년 사옥을 올리면서 런던 주식거래소(London Stock Exchange)라는 이름을 얻었다. '왕립'의 권위를 누르고 시장의 힘으로 성장한 LSE는 영국의 쇠퇴와 더불어 힘을 잃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계 3대 증권시장의 하나다. 오늘날 왕립증권거래소의 흔적은 런던 국제금융선물거래소(LIFFE)에서 희미하게 남았을 뿐이다. 주식매매 업무는 1939년 LSE로 넘어갔다. 런던의 한복판을 지키고 있는 건물도 명품 쇼핑센터로 바뀐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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