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회계감사시장도 소비자 주권 확립을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의 형태는 주식회사다. 그러나 초기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주식회사와 같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회사 형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소유주, 즉 주주가 기업에 투자하고도 기업 운영을 전문경영인이라는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제도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와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능력을 갖춘 기업가가 다수의 주주로부터 자본을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 오늘날의 주식회사다. 그렇다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라고 생각한다. 주주가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를 통해 경영자를 감시·감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중요한 해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회계감사 시장에서 소비자의 주권은 당연히 경영자를 감시·감독하는 주주에게 있다. 좀 더 확장해서 살펴보자. 기업의 채권자·거래처·종업원·정부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를 회계감사 시장의 소비자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회계감사 시장은 어떤가. 소비자인 주주가 소비자 주권을 잃은 듯하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은 수년 간 회계감사 보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라고 발표했다. 또 이를 두고 금감원은 충분한 감사인력과 감사시간 투입의 제약으로 감사품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감사보수 하락이 감사품질 하락을, 그리고 이것이 다시 감사보수 하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기업이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기업이 감사인을 선정하는 데 스스로 높은 비용을 들여가며 깐깐하고 일 잘하는 감사인을 선정할 리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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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감사 시장에서 주주에게 주권을 찾아주는 방법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인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얼마 전 개정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보자. 법률 개정을 통해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은 감사인을 마음대로 선정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를 확대했다. 이것이 제도 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다. 회계정책 당국의 제도 개선 노력과 함께 회계감사의 소비자인 주주가 먼저 자기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올 봄에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스스로 회계감사 보수를 세 배나 올리면서 제대로 감사를 받겠다고 선언한 것이 화제가 됐다. 분명 바람직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소비자가 요구할 것을 기업인이 선심 쓰듯 해주겠다고 나서는 모양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주주가 주식 투자에서 손해를 보고 감사인에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물론 이것도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진정한 소비자의 주권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소를 잃지 않도록 외양간을 튼튼히 해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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