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재정적자 및 경기침체 우려가 신흥국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신흥국들이 제2의 글로벌 위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경기 부양책에 서둘러 나서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고속 성장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자국 통화 강세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던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은 여전한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준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중국, 필리핀 등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WB) 총재는 지난 달 "유로존 등 선진국 위기가 신흥국으로 전이되기 시작했다"며 재정적자 등 선진국의 문제가 글로벌 경제 성장의 엔진 역할을 맡고 있는 신흥국을 흔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역시 "유로존 위기가 대공황을 초래할 수 도 있다"며 "유럽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전체 선진 경제가 위기 속에 엑스레이 검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들의 우려는 최근 속속 공개된 신흥국들의 경제 통계를 통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13일 발표된 중국의 9월 무역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최대 교역국인 유럽연합(EU)에 대한 수출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에 그쳤다. 전월 증가율(22%)의 절반에도 못미친 셈이다. 수입 증가율 역시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수입 둔화는 남미, 아프리카 등 다른 신흥국들의 원자재 수출이 그만큼 부진하다는 걸 의미한다. 남미 최대 경제대국인 브라질도 자동차 생산이 둔화되는 등 성장 엔진이 약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신흥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며 선진국 문제가 신흥국에 퍼지기 시작했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IMF는 중국, 인도 등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지난 4월에만 해도 8.0%로 내다봤으나 최근 7.7%로 하향했다. 이처럼 선진국 위기의 전이가 기정 사실화하자 신흥국 각 국은 자체적으로 위기 방어책 마련에 나섰다. 브라질이 높은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기준 금리를 12.5%에서 12%로 낮춘데 이어 인도네시아가 지난 11일 아시아 신흥국 중 처음으로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6.75%에서 6.5%로 전격 인하했다. 중국은 기존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는 완화책도 병행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꿨다. 중국은 최근 국부펀드를 통해 4대 국영은행의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식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신뢰도를 높이기로 했으며, 중국 산업 생산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책도 내놓았다. 또 필리핀은 기산산업 및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통해 16억6,000만달러를 푸는 경기 부양책을 최근 공개했다. WSJ는 "선진국과 달리 아직까지 신흥국들은 금리 인하, 정부 지출 확대 등을 통해 성장을 자극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며 "또한 강력한 내수 소비와 산업 지출이 수출 약화를 상쇄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