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봄 파종준비는 겨울부터

중국의 란싱그룹이 쌍용자동차 인수협상에서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것을 계기로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 특히 중국으로의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비단 자동차 기술뿐만 아니라 한국 정보기술(IT)산업의 첨단을 보여주는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분야에서도 오리온전기가 중국업체로 인수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첨단기술의 유출뿐만 아니라 제조업체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니 기술유출과 더불어 국내 제조업 기반의 붕괴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말 문익점(1329∼1398) 선생이 붓통에 목화씨를 감춰 국내로 가져와 이 나라 백성들의 `의(依) 문화`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목화에서 나오는 면사를 가지고 의복을 만드는 기술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선진기술(New Technology)이었음에 틀림없다. 두툼한 목화솜으로 만든 무명옷은 엄동설한(嚴冬雪寒)으로 알려진 우리의 추운 겨울을 너끈히 견딜 수 있는 신기술 제품이었던 것이다. 이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의 혜택이 얼마나 컸던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자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기술유출을 경험한 중국이 그렇게 `쌍심지`를 켜고 우리의 하이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갖는 이유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각설하고 기술유출과 제조업의 이전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관계가 될 상대를 키워줄 것이라는 우려뿐만 아니라 당장은 우리 땅에 있는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 청년실업을 풍자한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건달)`이라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수만명 또는 수십만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기술과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되는 상황은 묵과하기 힘든 일이다. 맹자(孟子) 문공(文公)편에 보면 `항산(恒産)이 있는 다음에야 항심(恒心)이 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항산은 경제적 기반을 의미하고 항심은 도덕성 내지 양심을 말한다. 먹고살 걱정거리가 없어진 다음에야 도덕이나 양심 등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해 대학 5학년, 또는 취업 3수와 같은 혹독한 시련을 겪는 우리의 청년들에게 경제의 양심 또는 정열이라고 할 수 있는 `벤처 정신`을 요구하기는 무리인 것 같다. 취업이 어려운 것에 비해 아이러니하게도 벤처기업에서는 정작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금융권이나 일부 대기업이 실시하는 공채에는 수백 대 일이 넘을 정도로 고급인력이 넘쳐나지만, 경제적 안정을 담보해줄 수 없는 벤처기업에 취직해 힘든 일과 불안한 미래를 이겨낼 `벤처정신`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시경(詩經) 가운데 `봄에는 파종으로 바쁘니, 겨울 동안에 가옥의 수리를 서둘러라`라는 말이 나온다. 풍성한 가을의 수확을 위해서는 봄에 씨를 부려야 한다. 봄에 씨를 뿌릴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겨울에 집도 수리하고 농기구도 정비하는 등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힘과 정열이 넘쳐나는 청년들은 우리 경제의 좋은 씨앗이다. 씨앗이 썩거나 시들지 않게 우리는 좋은 땅에 심어 물도 주고 가꿔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겨울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각종 제도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내일을 위한 정치, 우리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이나 정책이 아니라 지난 시대의 대선자금에 대한 문제로 이전투구가 한창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세계경제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제정세의 안정, 유가하락, 달러강세 등 `신3저` 효과로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경제회복기에 접어들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제도 이에 따른 효과로 점진적인 회복이 기대된다. 경제회복기를 대비해 현재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가. 세계경제의 봄이 왔을 때 우리는 아직도 집을 수리하고 있을 작정인가. 다시 한번 정책당국자들은 현실의 문제를 돌아보고 우리 기업들에 일할 맛이 나는 정책과 지원을, 우리의 청년들에게는 일할 의욕과 정신을 갖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조정일 케이비테크놀러지㈜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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