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100승까지]박세리가 뿌린 씨앗, 세리키즈 열매로 주렁주렁

지난 1988년 3월2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문밸리CC에서는 키 작은 동양 여자선수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었다. 일본 투어에서 뛰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탠더드레지스터 대회 출전 기회를 얻은 구옥희(55)였다. 이 일대 사건은 한국에서는 소식이 거의 묻혔지만 한국(계) 선수 100승의 첫 단추가 됐다. 1994년과 1995년 고우순(47)이 LPGA와 일본 투어 대회를 겸해 일본에서 열린 도레이재팬퀸스컵을 2연패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여전히 골프 환경이 척박했던 한국에서 LPGA 투어는 미지의 세계였다. 본격적인 미국 무대 개척시대를 연 주인공은 ‘골프여왕’ 박세리(34ㆍKDB산은금융그룹)였다. 고교 시절까지 국내에서 각종 대회를 휩쓸다시피 한 박세리가 좀더 넓은 세계로 눈길을 돌린 것이 한국과 세계 골프 역사를 바꿔놓은 첫 걸음이었다. 퀄리파잉(Q) 스쿨을 1위로 통과해 1998년 LPGA 투어에 입성한 박세리는 9차례 대회에서 한번도 10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현재는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에서 어누 누구도 예기치 못한 우승을 차지했고 2개월 뒤 최고 권위의 US여자오픈에서 ‘맨발 샷 투혼’으로 다시 우승하며 ‘신화’를 썼다. LPGA 투어 데뷔 첫 해 메이저대회 2연승은 사상 처음 나온 대기록이었다. IMF 외환위기로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개척자 박세리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100승 중 25승을 쌓은 박세리는 최연소 및 동양인 최초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김미현(8승)과 박지은(6승)이 박세리와 함께 1세대를 이뤘고 한희원(6승)ㆍ박희정ㆍ장정(이상 2승)ㆍ이선화(3승) 등이 가세했다. 특히 ‘박세리 신화’는 당시 소녀들의 가슴 속에 희망의 씨앗으로 뿌려져 싹을 틔우는 계기가 됐다. 코리안 군단은 2000년대 후반부터 새롭게 도약했다. 10살 안팎의 나이에 박세리의 성공을 보며 골프채를 잡았던 이른바 ‘세리 키즈’ 세대들이 거대한 신진 세력을 형성한 것. 이들은 개척자들이 닦아놓은 길을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8승을 거둔 신지애(23ㆍ미래에셋)를 필두로 한 최나연(5승)ㆍ김인경(3승)ㆍ지은희ㆍ오지영(이상 2승)ㆍ박인비ㆍ서희경ㆍ유선영ㆍ유소연(이상 1승) 등은 ‘한국 LPGA 투어’를 방불케 할 정도로 LPGA 투어를 주름잡고 있다. 2009년에는 단일 시즌 최다인 12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신지애와 서희경, 유소연 등 국내 무대에서 활동하다 미국 LPGA 투어 대회를 제패하면서 세계 무대와의 경계와 격차도 무너뜨리고 있다. 개척자들의 땀과 눈물로 닦아놓은 기반 위에 큰 무대에도 두려움 없는 신세대 코리아 군단은 이제 200승을 향해 거침없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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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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