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DIP, 태생부터 졸속·짝퉁

[커지는 웅진 파열음… 수술 앞둔 도산법] <br>미국식 제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검토 없이 일사천리로 입법·발효<br>무능 경영인 자리연명 꼼수 전락


"(부도 기업의) 회생절차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회사의 기존 경영자가 (법정)관리인이 되게 했고…."

최근 윤석금 웅진홀딩스 회장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도덕적 해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기존관리인유지(DIP)제도' 도입에 대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제기된 공개발언(속기록 기준)은 이뿐이었다.


시점은 지난 2005년 3월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당일 오후3시부터 개회된 회의는 오후11시를 넘기며 8시간가량 진행됐지만 DIP제도는 불과 10여초도 언급되지 못했다. 이후 해당 조항을 담은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일사천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발효됐다.

국회 다른 상임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까지도 곧잘 조목조목 법리를 문제 삼으며 퇴짜를 놓는 깐깐한 곳이 법사위이건만 DIP제도에 대해서는 어느 국회의원도 토를 달지 않았다. 태생부터 졸속 입법의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후 7년간 수많은 기업이 명멸하며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사이 일부 악덕 경영인들은 DIP제도에 기대 연명했다. 기업이 망해 채권자는 발을 동동 굴러도 기업주는 살아남는다는 부조리가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다.


제도 도입을 주도했던 정부는 DIP제도가 미국에서 이미 검증된 제도라는 점도 강조하곤 했다. 실제로 미국 연방파산법은 DIP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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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상은 정부 말과 달랐다. 미국 DIP제도는 우리처럼 대표이사 등 기존 경영인을 그대로 앉혀놓는 식이 아니다. 김성용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미국 DIP제도는 우리와 달리 기존의 대표를 교체하지 못하도록 법원이 강제하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미국에서 DIP제도를 적용 받은 기업 상당수는 이사진을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법조계 전문가들도 미국 연방파산법은 채무 기업의 대표이사가 아니라 채무 기업 자체를 유지한다는 의미로 DIP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우리 통합도산법 74조는 기업 DIP의 대상, 즉 기업관리자 선임 대상을 '채무자의 대표(쉽게 말해 채무 기업 대표이사)'로 한정해 채권단과 채무 기업 주주의 경영진 선임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 이렇다 보니 미국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짝퉁 입법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될 상황이다.

제도의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것은 자칫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우리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는 탓이다. 박성문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가 최근 공개한 사례를 보면 무능한 경영인이 DIP제도로 연명하며 부실을 키운 경우가 소개된다. 부산 소재의 선박항해장치 제조사 S사의 이야기다. 이 회사는 외환 관련 파생상품 손실로 위기를 맞아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는데 기존 대표이사가 DIP제도를 통해 경영을 유지하는 동안 무능함으로 경영실적이 더욱 감소해 결국 채권단이 경영인을 교체하는 사정에까지 이르렀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S사와 같은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며 DIP제도의 조속한 개정을 요청하고 있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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