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15일] <1396> 미디운하

1681년 5월15일, 미디운하가 뚫렸다. 지중해의 세테항에서 내륙도시 툴루즈까지 240㎞ 공사에 착수한 지 15년 만이다. 전쟁과 사치로 돈 쓸 곳이 많았던 루이 14세 치하의 프랑스가 초대형 토목공사를 벌인 데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운하로 연결하겠다는 웅대한 구상이 깔려 있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구상을 구체화한 인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지역)를 3,000㎞ 이상 우회하지 않고 해적과 파도로부터도 안전한 내륙운하를 건설할 수 있다는 계산을 1516년 내놓았다. 문제는 운하의 용수확보. 지역마다 해발고도(표고차)가 달랐던 탓이다. 난제는 150년이 지나서야 풀렸다. 부유한 징세청부업자 한 사람이 거대한 인공호수를 조성해 물을 공급하겠다며 정부를 설득해 1666년부터 땅을 팠다. 공사는 무수한 신기록을 남겼다. 최초의 운하용 터널을 뚫는 데 최초로 폭약을 사용하고 갑문 99개를 비롯해 댐과 인공호수, 강 위의 다리에서 배가 다니는 운하전용 교량 등 건축물 328개를 세웠다. 결국 공사비가 당초 책정한 336만리브르에서 1,500만리브르 이상으로 불어났다. 완공 이후에는 각종 시설의 유지비용에 허덕였다. 운하 역시 제 몫을 못했다. 무수한 갑문이 선박 운행시간을 지체시켰다. 결정적으로 대서양까지 뱃길을 연결할 가론운하가 뚫린 1857년에는 철도 노선이 가설돼 경쟁력을 잃었다. 화물운송이 1989년 완전히 끊긴 오늘날의 미디운하는 부유층의 놀이터다. 4인용 요트의 주말 임대비용이 180만~270만원. 휴가철이면 237만~348만원으로 뛴다.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운하변에 심은 4만5,000여그루의 나무 밑을 달리는 자전거길뿐이다. 나무를 심는 데는 운하건설 비용의 20분의1도 안 들어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