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이 28일 밝힌 저축은행 정책 방향은 지난 몇 년 동안 금융 당국이 수행해온 정책 궤도에 대한 '자기 부정'에서 출발했다. 부산저축은행 등의 부실책임이 금융회사는 물론이고 이들의 부적절한 영업행위를 통제하지 못한 채 때로는 이를 방조ㆍ확대한 당국에도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다만 이미 부실에 전염돼 잃어버린 소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제라도 외양간을 고치고 남은 소들에게는 '충분한 여물(새로운 먹을거리)'을 찾아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부실에 낙인이 찍혀 체력이 소진된 업계에 새로운 살이 돋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저축은행판 승자의 저주' 막는다=김 위원장이 내놓은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저축은행 간의 인수합병(M&A)을 제한하는 것. 대전ㆍ전주 등 부실한 곳을 인수해 한꺼번에 문을 닫게 된 부산저축은행의 사례가 재연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특히 부실한 대형 저축은행 중에는 적절한 인수자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부산처럼 당국이 반강제로 떠넘겨 문제가 된 곳이 많다. 당국이 만들어낸 '저축은행판 승자의 저주'를 막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앞으로 진행될 저축은행의 M&A에서는 보다 엄격한 대주주 요건을 들이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금의 부실을 잉태하게 만든 '강제 합병'의 책임론과 관련, "정상화 후 책임을 묻는다면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과도한 외형 확대를 막기 위한 또 다른 조치는 '8ㆍ8클럽' 재편과 '공동 대출'의 제한이다. 김 위원장은 "계열 저축은행에 대한 연결감독을 강화해 대형화와 계열화를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를 위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 이상, 고정이하여신비율 8% 이하의 우량저축은행인 8·8클럽의 동일인 여신한도 비중을 줄이고 여신한도를 피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동원한 부산과 같은 사례를 엄격하게 차단할 방침이다.
◇새로운 먹을거리 만들어준다=외형경쟁 차단과 건전경영 뒤에서 당국은 저축은행들의 새로운 자양분을 주는 방안도 곧 마련한다. 이미 큰 틀은 섰다. 김 위원장은 "업무 범위 등을 조정해 수익성을 높이는 방안을 대책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우선 검토 중인 것은 저축은행에 여신전문출장소를 설치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저축은행 본연의 기능인 서민대출 기능을 키우기 위함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종합금융사에서 취급한 업무 가운데 외환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를 저축은행이 모두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단기자금중개 업무가 핵심인데 대신 저축은행의 여신심사 역량을 한층 강화하도록 하는 방안이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차제에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만들어 곧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