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살처분 돼지 불쌍하지만 삼겹살은 좋다?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할 헤르조그 지음, 살림 펴냄)



닭고기 먹으며 투계 비난하는등
인간과 동물의 모순된 관계 밝혀
"위선 아닌 자비를 위한 타협" 지적
몇 개월 째 전국을 덮친 구제역으로 소ㆍ돼지를 비롯한 엄청난 숫자의 가축들이 살처분됐다. 이로 인한 후폭풍이 우려되는 가운데 인간의 탐욕, 동물복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간과 동물 관계의 권위자인 저자는 인류동물학적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탐구해왔다.인류동물학이란 아동기 동물 학대와 성인기 폭력의 상관성, 강아지 산책이 체중에 미치는 영향 등 인간과 동물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 저자는 최신 연구성과와 실제 일화를 섞어 합리적으로 보이는 동물과 인간 관계가 실상은 매우 모순되고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다는 점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실제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다양하게 노출된다. 쥐실험은 놔두고 원숭이 실험 연구자에게만 테러를 가하는 과격 동물보호운동가가 있고 투계(鬪鷄)를 잔혹하다고 비난하면서도 맥도날드의 식용 닭에는 군침을 흘린다. 애완용 쥐가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만 야생쥐는 죽여서 아무데나 던진다. 동물들과 맺는 다양한 관계에서 인간은 매우 일관성이 없는 셈이다. 미국 애완용품제조협회에 따르면 전체 미국 가정 중 63%가 애완동물을 기른다. 2009년 기준으로 개 7,800만 마리, 고양이 9,400만마리, 새 1,500만마리, 파충류 1,400만마리, 작은 포유류 1,600만마리, 어류 1억8,000만마리 등이 인간과 함께 동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거하는 동물들에게 쓰는 비용도 급증했다. 식비는 물론 애완동물 보모, 애완동물 호텔, 목욕 및 몸치장 서비즈, 복종훈련 마사지, 애견 산책인 고용, 동물대화 서비스 등에도 많은 돈을 써 영화ㆍ비디오ㆍ게임 등에 지출하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애완동물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살처분되는 동물들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삼겹살은 맛있게 먹고, 여성들은 모피 코트를 입은 채 애완동물을 사랑스럽게 안고 간다. 돼지고기는 거부하지만 고등어는 먹는 채식주의자도 있다. 저자는 인간이 이처럼 동물들에 대해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사고 자체가 본능, 학습, 언어, 문화, 직관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모순적인 태도는 비정상적이거나 위선적인 행동이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며 "인간이 인간이라는 증거"라고 분석한다. 동물을 대하는 남녀간 성별에서 비롯된 차이는 거의 없고 데이트에 성공하려면 강아지를 데려가는 게 낫다, 애완견을 잘못 선택하면 가정이 파탄할 수 있다 등 재미있는 연구결과와 사례도 소개한다. "도덕적 복잡성이 곧 도덕적 마비를 뜻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내가 만난 동물 애호가들은 대개 자기내면의 육식동물과 타협하며 지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크건 작건 동물들을 위해 일했다. 야생동물기금에 기부하고 고속도로 한가운데 놓인 거북이 안전하게 지나가도록 한쪽으로 차를 모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인간은 '자비로운 육식동물'인 셈이다. 저자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모순은 위선의 탈이 아니라 진정한 자비를 위한 타협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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