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24일] <1456> 밀과의 전쟁

농업용 연료와 비료 가격 인하, 농기계류 구입비 지원, 우수 종자 보급과 교육, 증산대회…. 통일벼 보급시책을 연상시키는 정책이 시행된 곳은 1920년대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밀 증산을 위해 갖은 수단을 짜냈다. 무솔리니의 명분은 주곡 자급자족. 국민들은 이를 반겼다. 20세기 들어 공업화와 인구팽창, 생활수준 향상으로 수입국으로 전락한 마당. 소련의 흉작으로 국제 소맥가격까지 급등한 상황에서 증산을 위한 ‘밀과의 전쟁’은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정치적 계산도 깔렸다. 쿠데타(1922년) 직전 16%에 머물던 지지도가 60%까지 올랐으나 강압통치로 위기를 겪었던 1924년 이후 민심을 달래려 고른 상징물이 밀가루다. ‘밀과의 전쟁’은 국제무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1925년 7월24일자로 발동된 관세부과 때문이다. 소맥 1톤당 14.5달러씩 붙은 수입관세는 네 차례 상승 끝에 1931년 33달러까지 올랐다. 강력한 증산ㆍ관세정책은 소맥 수입을 75%나 줄이고 국내 생산도 500만톤에서 700만톤 수준으로 늘렸다. 문제는 획일적 정책집행에 따른 후유증. 남부지역에도 포도나 올리브 같은 특산물 대신 밀 재배가 강요돼 농업 전반의 생산성이 나빠지고 남부는 더욱 가난해졌다. 밀에 주력하는 통에 소와 돼지ㆍ양 같은 목축업 출하도 줄어들었다. 마침 캐나다와 남미ㆍ소련의 풍작으로 국제가격이 급락해 이탈리아는 과도한 자금을 밀 자급을 위해 투입한 꼴이 돼버렸다. 서민들이 밀을 구입하는 데 톤당 75달러씩 추가 비용을 부담했다는 통계도 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을 뿐 정교하지도 못하고 정치적 계산이 깔린 정책의 말로는 익히 아는 대로다. 무솔리니는 어려워진 경제를 돌파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침략하고 결국은 2차대전의 수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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