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께


“(국민연금기금이 오는 2020년께 800조원 규모로 커지기 전에) 기금운용본부를 2개로 분리해 경쟁 체제로 가는 방안을 추진하겠다.(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기금과 운용조직을 둘로 쪼개면 관리비용만 많이 들고 수익률 경쟁을 구실로 서로 싸우거나 눈치만 보느라 ‘연못 속 고래’가 되기 십상이다. 외국 운용사를 인수해 국내와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낫다.(전 기금운용본부 간부)”


4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기금과 운용조직을 쪼개 경쟁체제로 가자는 기금 분할론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논쟁에 불을 붙인 이는 시장주의 경제학자로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회 예산정책처장을 지낸 최 이사장.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은 기금이 400조원 규모지만 나중에 800조원이 되면 기금운용본부장 한 명이 총괄하기 힘들다. 또 독점은 항상 부패를 야기한다. 2개의 본부체제를 만든 뒤 주식ㆍ채권 등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경쟁을 유도하면 성과는 물론 윤리적인 면에서도 큰 소득이 있을 것이다. 경쟁은 시장참여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윈윈 게임”이라고 했다. 기금운용본부를 별도의 공사로 독립시키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주장도 폈다.

기금 분할론은 기금운용체계 개편 방안이 논의될 때마다 거론되곤 하는 사안 중 하나다. 지난 2007년에는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 출신인 변재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 차원에서 공식 제기하기도 했다. 기금 운용을 민간에 안심하고 맡기려면 기금 거대화에 따른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고 소수에 의한 운용 위험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변 장관은 “기금을 쪼개는 것은 연못 속의 고래로 불리는 연금기금이 죽지 않도록 고래보다 더 작은 여러 마리의 물고기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복지부는 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금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공사 외에 자산을 따로 운용할 민간 자산운용사를 활용하거나 기금을 분할해 복수의 운용조직을 두는 방안을 검토했다. 민간 자산운용사를 활용할 경우 해외 운용사에 대해 한국에 본사를 두고 내국인을 고용하는 조건을 제시하면 금융허브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글로벌 금융위기, 기금운용위를 민간기구화할 경우 정부의 책임성과 가입자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는 정치권의 판단 때문에 없던 일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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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사장의 분할론도 얼마나 힘이 실릴지 미지수다. 복지부가 기금 분할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과거부터 기금 분할론을 펴는 학자들이 있었고 최 이사장 입장에선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정부와 교감은 없었다. 기금은 2020년께 800조원 규모가 되므로 최 이사장의 임기 중에 일어날 일도, 그가 할 일도 아니다”고 평가절하했다. 스웨덴이 연금기금을 5개로 쪼개고 각각 운용 주체를 달리해 운용하고 있는데 포트폴리오가 서로 닮아가고 비용만 많이 드는 등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금운용본부에서 기금을 운용해본 인사들도 “분할론은 부작용만 크다.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뛴다. 그보다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바뀌고 기금운용본부장도 2~3년이 멀다하고 바뀌는 풍토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의 연기금 관계자들은 그런 식으로 기금을 운용해도 문제가 없느냐”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국민들은 노후를 1차로 책임지는 국민연금을 실력과 명망을 갖춘 기금운용책임자가 5~10년 정도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의 독립성을 갖기를 원한다. 그런 여건이 되려면 아무래도 국민연금공단에서 독립하거나 기금운용본부장을 부이사장으로 승격시키는 등의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최 이사장은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은 실익이 없다”며 반대한다. 독립기구로 만들더라도 지금보다 우수한 성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고 어차피 정부로부터의 간섭을 피하기 힘들다는 논리다.

기초연금 도입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심기는 어느 때보다 불편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주무부처와의 조율도 거치지 않고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다. 이사장에게 더 급한 것은 2016년 전주 이전을 앞두고 이직을 고민 중인 기금운용본부 직원들을 다독이는 것이다.

임웅재 논설위원 jael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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