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ㆍ佛 학자, 격변기 아시아경제 담론서 나란히 출간
1960년대 일본경제의 급성장에서 2000년대 중국경제의 급부상까지 눈부셨던 아시아경제의 역동성은 '기적'이었을까, 아니면 '신기루'였을까. 그래서, 돈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고 서로 다투며 사회적 형평과 공존의 미덕을 외면하게 된 아시아경제의 현실은 위기인가 기회인가.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의 여진이 남아있는 아시아 경제에 아직도 유효한 질문들이다. 지난 50여년간 전도 양양했던 아시아 경제의 앞날은 오리무중. '기적'을 계속 이어갈지, '신기루'처럼 꺼지고 말지.. 지난주 동ㆍ서양의 아시아 전문가가 쓴 아시아 경제 담론서 두 권이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끈다.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아시아의 경제, 힘의 이동'과 장 뤽 도메나크 파리정치대학 교수의 '위기의 아시아'. 두 책은 아시아 위기의 원인과 실체를 보는 눈이 상반되고, 위기에 대한 처방도 엇갈린다.
다만 사회적 불균형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에 반대하고, 역내 국가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 아시아의 경제, 힘의 이동
아시아의 경제발전은 연쇄적이었다. 1960년대 일본의 경제 기적에 이어, 한국ㆍ대만 등이 그 기적을 이어받았고, 1990년대 '잠자는 거인' 중국경제의 급성장에서 동아시아 경제 기적은 절정에 도달했다.
마치 기러기 떼가 왕초 기러기의 이끌림에 따라 날개 치듯 아시아 경제는 힘차게 비상했다. 그러나 최근 왕초 기러기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가면서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아시아의 경제, 힘의 이동'은 역내 경제주도권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가는 현상황이 아시아 경제에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일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위기는 내부적으로 순위가 뒤바뀌는 상황에서 경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고, 외부적으로는 미국ㆍ유럽이 내부지향적인 중국 중심의 경제를 달갑게 받아들일 리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회는? '성장과 형평'이 균형을 이루는 경제협력체제를 만들어 지난 50년간 아시아가 쌓아온 기적을 완결하는 것이다. 저자는 역내 경제협력, 무역확대 등을 통해 '탈락하는 기러기'가 없는 아시아경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번순 지음삼성경제연구소 펴냄)
■ 위기의 아시아
박번순 연구원이 아시아 지역의 자립적 경제 협력체제 건설을 주장하는 등 아시아의 단합과 일체감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도메나크는 아시아 국가의 사회ㆍ정치적 일체감을 주창하는 '아시아적 가치'에 의혹의 눈길을 건넨다.
도메나크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최대 화근은 대도시 중심의 개발전략이 빚은 사회적 불균형과 민주주의 모델 부재로 인한 정치적 불균형이다. 대도시 편중의 불균형적 사회구조는 성장이 멈춘 시기 대안 부재의 상황을 초래하고,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는 민권을 제약함과 동시에 경제 개혁을 가로막는다는 것.
저자는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로 이러한 동아시아의 취약성이 일거에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이미 근대화ㆍ서구화가 완료된 이 지역에 '아시아적 가치'라는 사이비 논리를 내세워 사회ㆍ정치적 불균형을 정당화 한 대가로 금융 위기가 '증폭'됐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아시아 역내 국가간의 분열은 우려한다. 한편에 중국을 축으로 형성된 화교경제권이, 한편에는 일본ㆍ한국ㆍ대만 등 미국과 밀착된 경제권이 맞서 분쟁의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예방할 수 있는 협력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도메나크의 결론은 "아시아 경제의 희망은 민주주의 뿐"이다. 그리고 그 표본으로 한국의 정권교체와 IMF졸업을 들면서 "한국이 권위주의적인 방법이 경제 위기에 유일한 해답이라는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고 찬사를 보낸다. (장 뤽 도메나크 지음ㆍ최연구ㆍ박성윤 옮김ㆍ삼인 펴냄)
문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