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6월 28일] <1734> 6·28 조치


'금리 4.5% 인하, 법인세율 33~38%에서 20%로 대폭 감축.' 1982년 6월28일 정부가 발표한 경기활성화 조치의 골자다. 각종 경기대책을 남발해 '조치 정권'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5공이 내놓은 조치 중에서도 6ㆍ28조치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해외출장 중인 H그룹의 C회장이 '그럴 리 없다. 다시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을 정도다. 정부의 과감한 결단에는 자신감과 위기감이 복합 작용했다. 물가급등세를 잡았다는 확신을 가졌지만 수출부진과 경제난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는 조바심이 초대형 대책을 탄생시켰다. 불과 5일 뒤에는 보다 메가톤급 대책이 나왔다. '금융실명제의 실시와 사금융 양성화' 등을 담은 7ㆍ3조치가 그것이다. 왜 서둘렀을까. 건국 이래 최대 사기극으로 기록된 장영자 사건에 권력층 개입설이 퍼지자 권력은 초강도 대책을 원했다. 마침 개혁적 경제제도를 추구하던 관료 그룹이 경제 정책 라인을 장악했던 상황. 정치권의 급박한 사정과 맞물려 초대형 조치들이 잇따라 나왔다. 문제는 의욕만 앞섰다는 점. 주무부처 장관조차 몰랐다. 뿐만 아니라 6ㆍ28조치가 나오기 불과 닷새 전에는 재무부가 법인세를 올린다는 세제개혁안을 발표했을 만큼 손발이 맞지 않았다. 청와대의 독주와 물먹은 관료들의 불만, 금융실명제에 대한 여당과 기업인들의 반발로 연이어 나온 초대형 경제대책은 곧 빛을 잃었다. 금융실명제의 생명이 꺼지고(失命) 법인세 인하도 없던 일이 돼버렸다. 후유증은 국민경제가 그대로 떠안았다. 저금리와 실명제 추진에 거액자금이 제도권에서 나가 부동산 투기를 만연시켰다. 1982년에는 기업공개가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로 증시도 힘을 못 썼다. 3저 호황이 없었다면 5공 경제는 대형 조치의 후유증으로 몰락했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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