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세상] 위대한 명성 뒤에 감춰진 위인들의 이중성

■ 만들어진 승리자들 (볼프 슈나이더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br>"월계관 썼다고 모두 위대한 것 아냐"<br>역사 속 묻혔던 사실 샅샅이 파헤쳐


니체

마르크스

나폴레옹

토마스 만이 '괴테와 함께 독일어를 완성시킨 사람'이라고 칭했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창문을 부수고 다른 환자들을 걷어차고 남의 등을 껑충 뛰어넘고 침대 밑에서 잠을 자고 똥을 먹고 오줌을 마셨다. 바로 실존주의의 선구자이자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평생 정신병원을 오가던 프리드리히 니체(1844~1879)의 숨겨진 모습이다.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발견해 세계사의 큰 획을 그은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위대한 모험 정신과 도전 정신을 인정받으면서 역사상 위대한 탐험가 중 한 명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는 줄곧 자신이 도착한 곳은 아시아 대륙이라고 주장하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 태생의 탐험가 레이프 에이릭손을 비롯한 몇몇 인물이 콜럼버스 이전에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기도 했다.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언론인으로 '위대한 패배자'라는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는 "월계관을 쓰고 있으면 모두 위대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명성이 어차피 로또와 다름없다면 우리 자신의 새롭고 독자적인 평가로 역사가와 비평가들의 작위적이고 우연적인 결정을 깨부수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위인, 천재, 명성에 관한 연구서와 역사 인물을 다룬 역사서, 전기, 논문, 박물관 자료 등 방대한 문헌을 추적해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사실, 즉 세계사가 기억하는 승리자의 이면을 샅샅이 파헤친다. 인류사를 빛낸 승리자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담은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위인이 백과사전이나 교과서에 실리기까지의 과정을 냉철하게 추적하고 있다. 칭기스 칸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환경과 우연으로 극히 운이 좋았던 위대하지 않은 유명인, 넬슨이나 니체처럼 질병과 광기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 위대한 유명인을 재조명하며 명성 뒤에 가려진 인물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저자는 마릴린 먼로와 그레타 가르보가 현대적인 화장술과 성형 수술의 성공적인 수혜자였을 뿐이며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로 기록된 윈스턴 처칠은 실상 지독한 전쟁 애호가였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창시하고 계급에 관계없이 평등한 세상을 주창했던 카를 마르크스는 지인들의 돈을 제 돈인 양 꺼내 쓴 뻔뻔함의 극치였다고 주장한다. 위인들끼리의 평가도 엇갈린다. 보들레르는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 볼테르를 '멍청이들의 왕'이라 칭했고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헤겔이 '뒤죽박죽 엉터리 철학'으로 유명해졌다고 혹평했다. 또 베르디는 모차르트를 조롱했으며 니체는 바그너를,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를 비웃었다. 저자는 "우리는 수많은 인물이 복잡하게 뒤엉킨 역사적 과정을 단순화시켜 누군가 한 사람에게 고착화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특히 그 사람이 승리와 비극, 비전과 어리석음, 천재성과 광기를 부지런히 오가는 인물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말한다. "한번 인정된 위인에 대한 절대적 숭배만큼 위험한 것은 없고, 공적으로 신성시되는 권력에 대한 굴종만큼 큰 재앙도 없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세간의 평가를 무작정 따르는 태도에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 동시에 기회를 얻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수한 나폴레옹과 모차르트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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