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공개된 석유제품 공급가격은 정유사별로 다른 유통구조를 반영하지 않는 등 허점을 노출해 오히려 소비자들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또 가격공개로 유류 세금이 과다하다는 점만 다시 한번 부각됐을 뿐 당초 취지인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 유도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가격공개에서 물량의 95.6%를 SK네트웍스 등 대리점에 넘기는 SK에너지의 유통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허점으로 꼽힌다. SK네트웍스가 SK에너지로부터 받은 물량을 일선 주유소로 판매할 때 발생하는 마진은 고려하지 않아 일방적으로 SK에너지의 가격이 가장 싸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대리점 공급기준이 각각 22%와 16.5%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물량을 일선 주유소에 직접 넘기는 GS칼텍스와 S-OIL의 가격은 높게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이날 공개된 공급가격은 SK에너지만 유독 보통 휘발유 리터당 1,397원으로 나머지 3사에 비해 16~17원가량 저렴하다. 그러나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망(www.petronet.co.kr)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일까지 일선 주유소의 폴(브랜드)별 평균 판매가격은 SK에너지가 휘발유 리터당 1,560원58전으로 가장 비싸다. 공급가격과 일선 주유소 판매가격 순위가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SK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전국의 주요 요지에 들어선 주유소 중 SK 브랜드의 비중이 높아 실제 소비자 가격이 높게 나오는 것”이라면서 “SK에너지는 앞으로도 SK네트웍스 등 대리점을 통해 내수물량을 공급한다는 정책에는 변함이 없으며 대리점과 주유소 단위에서 얼마의 마진을 취하는가는 관여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가격공개가 정유사 간 가격경쟁을 유도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서는 정유4사 모두 고개를 가로젓는다. “공급가격 순위와 실판매가격 순위가 정반대로 나오는 등 공개된 가격이 비교의 준거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는데 정유사들이 왜 가격경쟁에 나서겠냐”는 것이다.
GS칼텍스의 한 관계자는 “세전 공급가격이 500원대이고 정유사들의 영업이익률이 2~4%인 것을 감안하면 휘발유 1리터에 붙는 정유사 마진은 10~20원에 불과하고 특히 내수물량만 놓고 보면 마진은 리터당 10원 미만”이라면서 “누누이 밝혔듯이 정유사들의 가격경쟁 폭은 리터당 10원 이내로 제한적이고 이나마도 유통과정에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석유업계 일각에서는 가격공개로 정유사들의 공급가격이 상향수렴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석유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계산 기준이 다른 SK에너지를 빼면 3사의 공급가격이 비슷한 것으로 나왔다”면서 “정유사들이 이에 안심하고 공급가격을 슬슬 높일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주유소업계도 이번 가격공개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자칫 고유가로 인한 원망의 대상이 정유사에서 주유소로 넘어올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주유소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도시와 수도권의 극소수 주유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유소가 가족노동을 투입해가며 지역 상권에서 처절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특히 땅값과 임대료ㆍ인건비가 크게 올라 고통이 크다”고 호소했다.
석유업계의 한 전문가는 “동일한 기준에 의해 정유사별 공급가격이 계산됐어야 하는데 결국 우려했던 것들이 이번 가격공개로 다 터져나왔다”면서 “결국 기름값을 내리려면 세금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만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라고 실망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