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는 은은한 백자의 미학이 카메라 앵글에 담겼다. 사진작가 구본창이 지난 3년간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민예관, 영국 브리티시 박물관 등 세계 각지에 흩어진 보물급 조선 백자에 포커스를 맞춘 사진전을 국제갤러리에서 30일까지 연다. 지난 89년 어느 책자속 서양할머니가 큼직한 달항아리 옆에 앉아 있는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보고 그는 조선과 서양의 미묘한 조화를 느끼며 궁금증을 키워갔다. ‘조선의 백자가 제 나라를 떠나 방황하는 연유가 무엇일까. 할머니는 어떻게 달항아리 옆에 앉아있게 된 걸까.’ 그의 생각은 15년 동안 이어졌고, 2003년 일본 교토 여행길에서 드디어 작업을 결심했다. 투박하면서도 간결한 무색무취의 백자는 흰 속살을 드러내며 그의 앵글에 잡혔다. 유약을 발라 가마에 넣기 전 도공이 빚어낸 그 상태의 약간 발그레한 달항아리가 있는가 하면, 초점 흐린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 데생처럼 표현된 수더분한 달항아리도 있다. 한지를 배경으로 찍힌 도자기는 분홍빛을 띄며 아슴프레하게 여운을 남기며 다시 태어나 보는 사람들에게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룬 백자병은 왕실에서 사용했을 법하고, 그 옆의 주둥이가 기울어진 병은 밭일 하던 사내들이 새참을 먹으며 막걸리를 따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빗나간 포커스는 도자기의 정교한 사실감보다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박물관 도록에 등장하는 도자기의 상품성 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의 방에 놓여있었던 백자의 실체를 살리고 싶었다”며 “촬영하는 동안 현란한 문양도 화려한 색상도 없이 자칫 초라해 보이는 백자의 숨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 선조의 숨결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동양적인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먼저 반응을 보였다. 국제화랑이 지난 6월 참가했던 스위스 바젤아트페어에 그의 작품 두점이 첫날 모두 판매돼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