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의 장점은 실손보상이고, 생명보험의 장점은 정액보상이다. 하지만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문제가 대두돼 모든 손해보험은 실손보상을 일정비율로 제한하고 생명보험은 고액보험의 경우 제한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지금 필자는 보험학 강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근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악화를 염두에 두고 민영의료보험의 의료비보장한도를 70~8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업계의 반발이 매우 거센 상황이다. 현재 의료보험시장 상황과 보충형 민영의료보험 특성 등을 감안할 때 단순한 업계입장이 아닌 국민과 공적의료보험 입장에서 몇 가지 간과된 것이 있지 않나 생각이 된다.
우선 KDI가 분석한 바와 같이 현재 민영의료보험 가입자의 의료이용량이 비가입자보다 대체로 높지 않고 암 등 일부 영역에서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의료이용량이 비가입자보다 매우 높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KDI는 또 일부 영역의 높은 의료이용량이 향후 민영의료보험 확산 시에는 보험산업 전체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비한 제도적 장치, 예를 들면 본인부담 책정 등이 마련돼야 함을 권고하고 있어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민영의료보험 보장한도 제한 정책이 올바른 방향임을 내비치고 있다.
두번째는 한국의 실손형 의료보험시장이 아직까지 기본적인 시장질서 및 제도적 인프라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의료이용자의 불필요한 의료이용량을 줄이기 위해 설정한 법정본인부담금을 실손형 민영의료보험에서 100% 보장함에 따라 국가보건정책과 사실상 배치되고 있는 상황이며 실손형 민영의료보험의 손해율이 높아도 다른 회사와의 마케팅 경쟁 때문에 보험사 자율적으로는 100% 미만으로 보장한도를 낮출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보충형 민영의료보험의 보장한도를 일부 제한하는 방안은 민영의료보험 시장의 안정적 정착과 공적의료보험에 대한 보충형 민영의료보험의 견실한 역할 수행을 위해 일부나마 필요한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 실손보험 가입자인 1,500만명뿐만 아니라 향후 가입할 더 많은 가입자, 즉 국민의 입장에서 민영의료보험의 보장한도가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업계에서는 정부가 민영의료보험의 보장한도를 제한한다면 1,500만 보험 가입자의 금전적 부담만 증대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에 치료비의 100%를 보험사가 부담하다가 정부가 민영의료보험의 보장한도를 제한한다면 계약자가 치료비의 일부를 부담해야 함에 따라 가입자의 치료비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맞는 말이긴 하다. 다만 한가지, 정부가 민영의료보험의 보장한도를 제한한다면 그만큼 보험료가 저렴해져서 대다수의 가입자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부 가입자의 불필요한 의료이용 증대로 인한 보험료 상승분을 일반 대다수의 선량한 가입자가 부담하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일부의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억제하고 대다수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경감을 위해 민영의료보험의 보장한도는 일정 수준 제한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민영의료보험이 활성화된 해외 선진국을 보더라도 실손형 의료보험의 보장한도가 100%인 국가는 거의 없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서도 의료이용자의 모럴 해저드 방지를 위해 환자의 본인부담액을 민영의료보험에서 전액(100%) 보장하지 못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여러 면을 고려해 볼 때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민영의료보험 보장한도 축소는 의료보험 시장에 대한 규제화 측면도 존재하지만 한국 의료보험 시장의 성장과 확대를 위한 일정시점의 안정화 조치로 생각되며 향후 이를 통한 더 많은 보험시장의 성장이 이뤄지리라 판단된다. 특히 봉급생활자의 의료보험료가 매년 인상되는 것은 가벼운 질병에 대한 이용자의 “부담이 너무 적다”고 지적되는 점에서 경영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