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다주택자, 이젠 투기자 아니다


대선이 끝난 지 20일이 지났지만 지인들과의 저녁 술자리에서는 여전히 선거 결과를 놓고 이러저러한 얘기가 오간다. 특히 50대 연령층에게는 더더욱 할 말이 많은 12ㆍ19 대선이었던 것 같다. 88.9%의 투표율이 말해주듯 혹자의 표현대로 ‘아픈 사람 빼곤 다 투표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투표율을 두고 대선 이후 여러 정치적 해석들이 잇따랐지만 부동산시장에서도 대선 결과를 놓고 재미있는 해석이 제시됐다. 보유주택 등 자산을 팔아 노후에 대비해야 할 50대가 신규 주택 수요층인 20대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이번 대선 결과가 수치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회복될까 하던 주택시장의 침체가 어느덧 6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10년 주기로 집값이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는 ‘주기설’을 들어 집값이 회복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대선 결과에서 뚜렷이 나타났듯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으로 예상보다 더 긴 구조적 침체를 예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집값 바닥론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조차 집값이 회복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급등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전망에는 동의하고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집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지금 주택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 오르고 떨어지는 것보다 거래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집값이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경기침체로 젊은 층은 여전히 집을 사기에는 여력이 부족하고 1주택자 역시 기존 집이 팔리질 않으니 새 집으로 갈아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의 자금은 풍부하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 어느 정도 물꼬를 터주면 시장에 유입될 수 있는 단기 부동자금이 무려 66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유계층은 수요 실종으로 위기에 처한 주택시장의 가장 현실적인 유효 구매층이다. 이들은 무리하게 대출에 의존하지 않고도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에 가계부채 문제로부터도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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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들은 섣불리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상당수 규제들이 풀렸음에도 주저하는 것은 시장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도 한몫 한다.

특히 다주택자 세제감면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은 여전하다. 여론은 여전히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집은 공공재’란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워낙 뿌리깊게 각인돼 있는 탓이기도 하다. 심지어 ‘부동산 필패론’을 펼치는 사람들조차 다주택자에 대해서만은 유독 기존의 잣대를 들이대려 한다. 당초 폐지로 가닥을 잡았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법안이 ‘유예’로 바뀐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보는 시각은 어디까지나 집값 급등기의 논리다. 집으로 돈을 버는 시대가 끝났다면 보유주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산가치의 손실은 커진다. 잉여주택을 사는 것은 대출 부담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들의 애물단지를 떠안아주는 선순환적 행위가 아닌가.

여기에 다주택자가 보유한 잉여주택은 고스란히 임대시장의 새로운 공급원이 된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지만 서울의 경우 여전히 주택부족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사철만 되면 전월셋값이 들썩이는 것은 연례행사다. 하지만 서울시내 주택공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신규 개발 여지가 줄어들어 현실적으로 도심지에 양질의 중산층용 임대주택 공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다주택자의 잉여물량은 임차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소한 현재의 시장상황에서 다주택자는 시장 교란자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수요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급자 역할을 하는 다양한 시장 참여자 중 하나다. 집값 하락에서 촉발된 주택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에 다주택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을 포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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