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민관 '에너지 드림팀' 만들어 공급난 대비… 원전 지속 육성을



7년내 유가 300달러까지 폭등 가능성… 새 정부 신재생에너지 개발 적극 지원
기업도 M&A 통해 핵심기술 확보해야 WEC 대구총회로 한국 위상 높아질 것


"앞으로 7년 안에 2008년 수준을 뛰어넘는 유가폭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미래의 에너지 공급부족 사태에 대비해 정부와 민간기업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풀어갈 수 있는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영훈(61ㆍ사진) 대성그룹 회장은 21일 서울 관훈동 본사 회장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급변하는 세계 에너지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다음달 출범을 앞둔 차기 정부에 이같이 제안했다.

"에너지 공급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2020년 이전에 또다시 전세계적인 유가폭등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향후 7년 내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300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국가 경제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어렵게 일궈놓은 경제성장의 토대가 한순간에 흔들릴 수도 있다는 얘기죠."

김 회장은 국내 에너지업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에너지 전문가다. 지난해 11월 그는 세계 최대 에너지 전문 민간단체인 '세계에너지협의회(WEC)'의 공동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그 누구보다 세계 에너지업계의 흐름을 잘 꿰뚫어보는 인물로 평가 받는다.

김 회장은 "현재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관(官)' 중심의 에너지 수급체계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다"며 민간기업의 목소리가 좀 더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 에너지시장의 변화무쌍한 흐름에 보다 빠르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민관 합동의 '드림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맞춰 새 정부가 국내외 에너지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일관된 에너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전세계는 '에너지 안보전쟁'이라 불릴 만큼 각국마다 에너지 자원 확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 빈국인 동시에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가인 우리나라로서는 미래의 에너지 수급불안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에너지협의회(WEC)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2년 에너지지속가능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가 에너지 안보' 순위에서 전체 조사대상 90개국 가운데 61위에 머물렀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가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 에너지 분야에서 유일하게 강점을 지진 원자력발전산업을 계속 육성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 원전산업이 '건설'과 '운영'의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며 "현재 계획된 추가 원전 건설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면서 건설과 운영의 노하우를 쌓아간다면 우리나라도 프랑스에 필적할 만한 세계적인 원전강국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김 회장은 에너지 안보를 위한 중장기적인 과제로 신재생에너지를 주목했다. "2050년이 지나면 석유와 천연가스 등 기존의 화석연료들은 모두 바닥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미래에는 환경친화적이면서도 반영구적인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죠. 그때까지 한국 기업들은 보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핵심 기술력을 확보하고 시장 지배력을 넓혀갈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전세계 에너지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것으로 주목 받고 있는 셰일가스의 전망에 대해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셰일가스가 새로운 미래 에너지원의 대안이 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회장은 "물론 셰일가스의 생산이 본격화되면 가스가격도 지금보다 20~30%가량 내려가고 중동 산유국 중심의 에너지 질서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하지만 세계 최대의 셰일가스 생산국인 미국도 자국 내 수급이 불안해지면 수출을 통제할수밖에 없는 만큼 셰일가스가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셰일가스에 대한 '묻지마식 투자'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올해 10월부터 세계에너지협의회(WEC)의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 이은 또 한 명의 한국인 국제단체 수장 탄생이다. 그는 우선 3년간의 공동의장직을 수행한 뒤 2016년부터는 차기 단독의장으로 다시 3년간 세계에너지업계를 이끌 예정이다.

"WEC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94개국의 회원국을 보유한 최대 민간 에너지 국제기구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각각 원유 수출국과 수입국만을 대변하는 반쪽자리 단체라면 WEC는 산유국과 수입국, 공공과 민간을 모두 포괄하는 단체입니다.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중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인 셈이죠. 유엔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 지표를 만드는 작업을 WEC에 부탁한 것도 WEC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WEC도 다른 국제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유럽과 북미 등 선진국들이 주도해온 게 사실이다. 실제로 1923년 출범한 WEC는 지난 90년간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서구권 국가에서 의장이 배출됐다. 그랬던 WEC에서 최초의 한국인 수장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제가 WEC의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담당 부의장이 됐던 2005년만 해도 국제 에너지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에너지빈곤과 에너지수급안정 등에 대한 이슈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회원국들의 공감을 사기 시작했죠. 특히 반 총장과 김 총재가 배출될 정도로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얼마 전부터는 회원국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견제가 나돌 정도였죠."


김 회장은 앞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에너지 소비국들의 입장을 잘 반영해 WEC를 이끌어갈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 세계 에너지 시장은 '산유국'로 대표되는 에너지 공급자의 영향력이 컸던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아시아를 포함한 에너지 소비국가들의 목소리도 적극 반영해 세계 에너지업계가 균형 있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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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 회장은 10월 대구에서 열리는 '2013 대구 세계에너지총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계에너지총회는 WEC가 3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에너지 관련 국제회의로 일명 '에너지 분야의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아시아에서 WEC의 총회가 열리는 것은 1983년 인도 뉴델리와 1995년 일본 도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10월13일부터 5일간 열리는 대구 총회는 전세계 100여개국에서 5,000여명의 정부 및 학계, 산업계 리더들이 대거 찾을 예정이다. 특히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대구 세계에너지총회의 경제적 효과는 약 5,000억원으로 추산되며 고용유발 효과는 3,9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 공급자 중심의 에너지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아직 높지 않은 게 현실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구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대구와 우리나라의 에너지 산업이 세계 무대에 정식 데뷔한다면 세계 에너지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값진 초석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의 국격 상승과 정보력 증진 등 간접적 효과까지 모두 감안할 경우 대구 총회의 경제적 가치는 5조원을 훌쩍 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의 관심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자칫 그들만의 잔치가 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 기업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김 회장은 국제적 마당발답게 올해로 10년째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한해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다보스포럼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그는 "다보스포럼은 기업가들이 세계가 당면한 모두의 고민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소중한 자리"라며 "때로는 다보스포럼에서 신사업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보스포럼에서 느낀 생각들을 본인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대중들과 공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인터뷰 직후 다보스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곧장 인천공항으로 떠났다.






■ 金회장의 경영철학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福… 공익이 최상의 수익 모델"
에너지 빈국 전력난 해결 위해 몽골 등에 발전소 잇달아 건립

김현상기자

김영훈 회장의 명함에는 'A good name is more desirable than great riches(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와 'To give is more blessed than to receive(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다. 한때 목사를 꿈꿨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가 항상 잊지 않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좌우명이다.

김 회장뿐 아니라 대성그룹에 다니는 모든 직원들의 명함에서도 똑같은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기업활동이 단순히 이윤 추구를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에도 부합해야 기업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사회적 공익을 중시하는 김 회장의 남다른 철학은 대성그룹의 경영방식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대성그룹의 기업 모토는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프로보노(PRO BONO)'다.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수익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김 회장의 지론이 반영됐다.

"회사가 신규사업에 진출할 때 공익에 부합하는지를 가장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으로 세계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수익성이 충분한 지를 검토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하면 어떤 사업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대성그룹이 에너지 전문기업으로서의 특성을 살려 에너지가 부족한 전세계 저개발국가에 진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대성그룹은 지난 2003년부터 몽골의 나란ㆍ울란바토르ㆍ만다흐 지역에 사막화 방지와 전력공급을 위해 태양광과 풍력을 활용한 복합발전 시스템인 '솔라윈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여기서 만들어진 전기는 지역 주민들에게 공급되고 전력의 일부는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 쓰이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데 사용된다. 대성그룹은 몽골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에티오피아ㆍ카자흐스탄ㆍ방글라데시 등에도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솔라윈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김 회장이 에너지 공급에 남다른 열정을 쏟는 것은 '에너지'가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인류 생존과 발전의 필수요소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인류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전세계는 식량ㆍ에너지ㆍ물 등 세 가지 핵심자원 부족에 시달리는데 이는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에너지입니다. 에너지를 가지고 전력을 생산하면 식량과 물의 확보 및 수송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WEC의 공동의장으로서 요즘 그의 가장 큰 관심사도 '에너지 빈곤' 문제다. "전세계 인구의 40%는 아직도 에너지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에너지 빈곤을 해결하려면 에너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탄소 배출량도 급증할 수밖에 없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공조가 필수적입니다. WEC 의장으로서 자체적인 해결방안 연구뿐 아니라 유엔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계획입니다."

● 약력

▦1952년 대구 ▦1975년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1981년 미국 미시간대 법학석사ㆍ경영학 석사 ▦1987년 하버드대 신학석사 ▦1995년 대성그룹 기획조정실장 부사장 ▦2000년 대성그룹 회장 ▦2001년 주한 몽골 명예영사 ▦2002년 제8ㆍ9대 한국도시가스협회 회장 ▦2004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문화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2005년 세계에너지협의회 아태지역 담당 부의장, 대구육상경기연맹 회장 ▦2012년 대구세계에너지총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 ▦2013년 세계에너지협의회 공동의장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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