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걸친 봄가뭄이 농부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더니 엊그제 반가운 봄비가 내려 그런대로 가뭄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이와함께 한보사태 이후 정치·사회적 불안이 가중되고 경제 또한 급속도로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일 여야 지도자들이 모여 경제 회생과 사회안정을 위해 7개항에 이르는 합의사항을 도출했으니 기쁘기 그지없다.
필자가 이번 영수회담의 결과에 대하여 강한 믿음과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은 과거와 같은 정략적 차원의 흥정이 아니라, 애국충정의 초당적 견지에서 대화를 통해 일궈낸 만장일치적 합의라는 사실 때문이며 이는 곧 국민적 합의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1987년 제네바 대표부 재무관 시절에 겪은 일화 한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1986년 우리나라의 무역수지와 국제수지가 흑자를 나타내면서 BOP(국제수지)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수입제한 문제를 정식의제로 채택하게 되자 『무역수지 흑자기조가 완전 정착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어 수입제한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라』는 본국의 훈령에 따라 필자는 위원들을 설득키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89년말까지 수입제한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당시 우리 정책당국의 견해는 지금 생각해도 절로 실소를 머금게 한다. 즉 『BOP위원회의 의사결정방식이 만장일치니 우리나라만 반대하면 쉽게 해결될 것 아니냐』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제기구에서의 일반적인 의사결정 방식은 먼저 어떤 사안에 대하여 발제자의 충분한 설명이 있고 이어서 많은 시간에 걸쳐 찬반토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견해에 소수의 의견이 따르고 이는 전 참석자의 만장일치라는 형식으로 대외에 발표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토론과 대화의 문화가 국민문화로 뿌리내려야 하며 완전한 의견일치가 아니더라도 다수결로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라고 발표할 수 있는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견지에서 이번 영수회담결과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 아래 강한 추진력을 갖게 될 것이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어려움도 극복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