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위기극복 신화' 붕괴 우려 고조

[흔들리는 구조개혁] (1) 다시 도지는 한국병외환위기와 함께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우리경제의 고질병들이 도처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외환위기에 빠진지 3년이 지나면서 경제는 일단 지표상으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경제내부를 들여다보면 체질은 여전히 허약하고 불안요인은 널려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구조개혁의 추진력은 약화되고 다시 한국병이 고개를 들고 있다. 거시경제도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무역수지와 물가·금리·환율등 거시경제의 기본틀이 불안하게 움직이고, 주식시장마저 동요, 외환위기 극복의 성공신화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금융부실이 경제 전반의 안정기조를 무너뜨리는 복병으로 도사리고 있지만, 정부는 구조개혁의 원칙과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 대우·투신·현대의 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장기적 처방을 피한채,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땜질식 단기대책에 연연했다는 지적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행·근로자등 경제주체들은 IMF 위기 극복에 동참했던 3년전의 위기감을 까마득히 잊은채 제각기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제몫챙기기」 연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멕시코를 비롯,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환란을 겪은후 3년차에 또다시 경제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 5년단위의 주기적 외환위기에 시달렸다. 정부는 현재의 경제 여건으로 보아 제2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구조개혁이 지연되고, 사회각부문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빠질 경우 대외신인도는 추락하고 경제는 또다시 수렁에 빠질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위기의식이 풀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과소비 풍조와 투기바람이 일고 있다. 사치품 수입이 늘어 정부의 무역 흑자달성 목표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증시는 미국증시에 동조화된채 외국인투자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의 경제개혁이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정부내에는 현안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경제관료들은 성장율이 높고 물가가 안정세를 누리고 있어 「미국식 신경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는 가설에 사로잡혀 있다. 공적자금을 주거나 금리인하등 칭찬받을 일에는 적극 나서면서 부실 기업과 은행의 정리, 악화되고 있는 노사관계 해결등에는 나서지 않으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성급한 성공평가 = 경기에 대한 시각차가 현저한 가운데 거시지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경기상황에 대해 연구소를 비롯한 전문가집단에서는 물가불안을 차단하고 안정기조 유지를 위해서는 선제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정부는 검증되지 않은 신경제론을 펴며 낙관하고 있다. 금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금과 같은 고성장이 지속되면 물가와 금리 불안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의 젖줄인 무역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지난 1·4분기중 무역 흑자가 12억9,000만 달러에 그쳐,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연간 목표 120억 달러는 커녕 100억 달러 달성도 어려울 전망이다. 내년에는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물가는 지표상으로는 안정적이마 국제 유가가 여전히 불안하게 움직이고, 총선후 버스요금·지하철·상수도·가스요금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우리경제의 속사정이 이런데도 구조조정이 성공했고, 더이상 정부 주도의 개혁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갈수록 금융부실이 커지고 있는데도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공적자금 추가조성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달 전에는 정부가 비싼 초청료를 지불하며 국제 전문가들을 대거 초정, 구조조정의 성과와 한국경제의 새모습을 홍보하기도 했다. ◇고개드는 집단이기주의 = 정부는 금융 기업 노동 정부 부문으로 나눠 4대부문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각부문의 주체들은 3년전에 자발적으로 고통을 통해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한국의 국제신인도를 높히는데 동참했다. 그러나 경제가 회복되고 구조조정이 성공했다는 자만이 확산되면서 위기의식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개혁을 주도해야 할 정부마저 집단이기주의에 밀려 공기업 민영화 일정을 지연하고, 정부조직 축소를 전면 수정하고 있다. 정부기능조정위원회는 8일 공청회를 열고 재경부와 교육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키고, 여성청소년부를 신설하는등 정부기구를 확대하는 연구결과를 제출했다. 정권초기에 정부기구를 축소, 예산을 절약하고 규제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약속과는 다른 내용이다. 정부는 주식시장 침체와 환율 불안등을 이유로 한중·담배인삼공사·한국통신등의 민영화를 늦추고 있으나, 당초부터 노조의 반발과 각부처의 이기주의로 지연이 예상돼 왔다. 현 정부 초기에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노동시장 구조조정에 동참했던 노동단체들은 위원회를 탈퇴한데 이어 올해는 큰 폭의 임금인상과 구조조정반대를 요구하며 강경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민노총과 한국노총은 오는 31일과 6월1일을 기해 전국적인 파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금융계는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64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투입됐으나, 부실이 재발되어 40조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또다시 투입해야 할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국유은행 체제로는 기본적으로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경쟁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들도 저금리에 의한 금융비용절감, 인건비 감소등 일시적인 요인에 의해 경영사정이 좋아진것을 실력으로 착각, 구조조정과 기술개발등을 등한히 하고 있다. 미래준비를 안하고 있는 것이다. ◇일관성 없는 정책= 정부의 개혁 정책은 원칙과 장기비젼보다는 일시적인 시장 혼란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 투신사에 지원할 공적자금 마련이 묘연한 처지에서 정부는 5조원의 자금을 이달중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고, 현대투신에 대해선 재벌이 알아서 하라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시장 혼란을 가중시켰다. 현대투신 처리를 위해 계열사들이 동원된 것은 개별기업 경쟁체제를 지향하는 재벌개혁의 기본 방향과 정면으로 배체된다는 지적이다. 또 대우증권 처리를 산업은행에 떠맡김으로써 부실계열사 정리라는 금융 구조조정의 대원칙과 앞뒤가 안맞는 편법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김인영기자INKIM@SED.CO.KR 입력시간 2000/05/0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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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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