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기업·서민 우산 역할은 못할 망정… 보증 장사 하나"

[거꾸로 가는 금융공기업 연대보증]<br>"지나치게 손쉬운 리스크 관리 아니냐" 지적에<br>신보 등선 "재원 효율적인 배분 위해 불가피"

11월부터 은행들의 기업 간 연대보증제가 폐지됐지만 보증공기업들의 까다로운 보증 관행은 여전하다. 한 중소기업인이 경기도 수원의 중소기업진흥공단을 찾아 대출 상담을 하는 모습. /서울경제 DB


개인 사업체를 경영하는 김모씨(52)는 은행 이자는 물론이고 카드 사용대금도 단 한 번 밀려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그는 가족도 아니라 바로 자신이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에 등재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원인을 알아보던 김씨는 다시 한 번 놀라게 됐다. 지난해 초 손을 뗐던 인테리어 회사가 그의 인생에 발목을 잡은 것. 김씨는 한때 친구 부부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 동업자로 뛰어들었다. 당시 이 회사가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대출 받은 4,000만원의 연대보증을 섰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사고 몇 달 전 친구 부부는 타인의 명의를 빌려 또 다른 인테리어 회사를 설립했다. 심지어 본인 소유의 부동산 소유권까지 이전했다. 명백히 채무회피를 위한 재산은닉 절차로 의심됐지만 상환의 책임은 고스란히 김씨 몫으로 돌아왔다.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신보 관계자에게서는 "(김씨 소유 주택에) 가압류를 설정하는 것이 회사 입장으로서는 채무상환을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는 야속한 대답만 돌아왔다. 동반부실의 족쇄로 작용하던 연대보증 폐지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정작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책보증기관들이 과도한 연대보증을 요구하면서 기업들을 힘들게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속된 말로 '거꾸로 가는 보증'이다. 시중은행은 11월부터 기업들의 연대보증을 폐지했다. 지난 2008년 가계대출에 대한 연대보증을 폐지한 데 뒤이은 조치다. 그런데 정작 공익적 기능이 강조되는 정책 보증 공기업들은 여전히 높은 수준의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산을 씌워줘야 할 금융공기업이 도리어 우산을 가로 채는 형국이다. ◇금융 공기업에 깔려 있는 '보증의 덫'= 대표적 정책 보증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은 금융권 대출을 위한 보증 조건으로 대표이사 이외에 경영에 참여하는 직계존비속 등 광범위한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기업의 경우 ▦대표자(공동대표자 포함) 및 실제경영자 ▦대표자의 배우자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거나 사업장을 소유 중인 자 ▦대표자의 직계존비속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자 ▦동일 관계기업을 연대보증인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법인기업에는 ▦대표이사ㆍ무한책임사원ㆍ실제경영자 ▦과점주주인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는 자 ▦대표이사의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자 ▦동일 관계기업 등의 요건에 해당하는 모든 이에게 연대 입보를 요구한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세금으로 운용되는 정책금융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불가피하다"며 "특히 보증업무의 경우 별도의 담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간 신보 및 기술보증기금은 연대 입보 자격을 수차례에 걸쳐 개정했다. 이에 따라 보증기관의 평균 연대보증인 숫자는 2006년 1.61명에서 2010년 1.24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타 정책금융 기관보다 연대보증 요건이 까다로워 언제 '보증의 덫'에 빠질지 모른다. 실제 중소기업의 시설ㆍ운영자금 등을 지원하는 중소기업청 산하 중소기업진흥공단은 무담보 신용대출의 경우 대표이사나 실질 경영자 1인에게만 연대 입보를 요구한다. "자금회수를 위한 조치보다는 정책자금을 사용하는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중소기업들, 금융 공기업이 '보증 장사'를 하나=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시중 은행보다 신ㆍ기보 등 금융 공기업이 더 까다로운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손쉬운 리스크 관리를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중기 관계자는 "우산 역할을 해야 할 정책금융이 시중 금융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오히려 '보증 장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품게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연대보증의 순기능을 100% 무시할 수는 없다. 신용등급이 낮아 시중 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기업인들은 그나마 연대보증을 통해 자금을 융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도 2008년 가계대출에 대한 연대보증을 폐지하면서 예외 조항을 뒀다. 신용이 낮은 사람들은 보증인을 세워 대출 받을 수 있는 상품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부실 부담을 덜어버리기 어려운 것도 또 한 가지 과제다. 신보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6개월 미만 단기보증 사고는 2008년 411억원(185건), 2009년 1,125억원(702건), 2010년 615억원(336건) 등 해마다 늘고 있다. 신보의 한 관계자는 "(연대보증에 대한) 중소업계의 불만을 알지만 보증재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연대보증 축소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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