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부실 5개은행 퇴출1년] 어떻게 바뀌었나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 미증유의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접어들면서도 국민의 가슴켠에는 「은행불사(銀行不死)」라는 말이 신조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8년6월29일, 신화는 끝났다. 5개 은행의 퇴출 발표, 이는 100년 넘게 한국 금융계를 지배해온 고정관념이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이는 한국 금융산업을 격동의 현장으로 몰고가는 시발점에 불과했다. 은행권에 끊임없이 계속된 합병과 매각, 그리고 「철밥통」으로 인식됐던 은행원들의 무더기 퇴출바람 등. 물론 변화는 금융산업에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의건 타의건, 한국 금융산업은 1년새 선진금융기법의 입맛을 보았고, 「이국적」 경영방식이 한국의 은행경영에 새로운 풍토로 자리했다. 또 이에 적응키 위한 은행들의 치열한 「정글의 법칙」은 지속되고 있다. ◇은행 퇴출, 1년간의 여정= 1년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라는 무자비한 칼날아래서 5개은행(BIS 8%미달)은 수명을 끝냈다. 대신 우량은행이라 평가받던 한미(경기)·신한(동화)·주택(동남)·국민(대동)·하나(충청)은행과 정부당국간의 인수를 둘러싼 지리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인수은행들은 퇴출은행들이 갖고 있는 부실자산이 미래에 부실화될 것에 대비, 한푼이라도 더얻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른바 「풋백옵션(인수후 추가발생한 부실자산에 대한 손실보전)」이란 용어가 한국인에게 새로운 용어로 정립되는 시기였다. 물론 부작용도 많았다. 인수은행들은 국가 금융산업에 공헌한다는 표면적 명분에도 불구, 퇴출은행의 자산을 인수하면서 끝내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라는 불명예에 휩싸이기도 했다. 국가로부터 조금이라도 돈을 더받아내기 위해 고의부도를 냈다는 비난도 쇄도했다. 인수은행으로선 「좋은일하고 욕만 먹는다」는 불만이 나올법도 했다. ◇은행퇴출은 구조조정의 전주(前奏)에 불과했다=5개 은행의 퇴출은 사실 이후 진행된 금융산업의 격동에 비하면 그리 큰 부분은 아니었다. BIS 8%에 미달한 7개 조건부 승인은행은 살 떨리는 자구노력을 벌였다. 상업-한일, 국민-장기신용, 하나-보람, 조흥-강원-충북 등이 짝짓기의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특수은행을 포함해 모두 33개에 달했던 은행은 24개로 줄어들었다. 강원은행이 조흥은행에 합병되면 은행수는 23개로 줄어든다. 6,000개에 육박하던 은행 점포수도 1,000여개가 없어졌다. 집단이 구조조정을 겪으면 소속원들의 아픔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한 일. 퇴출은행에 몸담았던 수많은 은행원들이 길거리에 나앉았고, 그 파고는 살아남은 은행에도 적용됐다.「선진국 수준의 생산성」이란 논리가 은행권 구조조정에 이용돼 1만명이 넘는 고급인력들이 새로운 일터를 찾기 위해 몸서리를 쳐야 했다. 11만4,000여명에달하던 은행원이 7만5,0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작업중 하나는 자본금 늘리기였다. 외환은행은 코메르츠를, 하나은행은 국제금융공사(IFC)를, 국민은행은 골드만삭스를 파트너로 삼아 은행의 외형키우기를 시도했다. ◇은행권의 판도변화에 동인(動因)으로 작용=5개 은행의 퇴출은 기존 은행권의 판도에 지각변동을 몰고왔다. 퇴출후 계속된 합병작업 등으로 수십년동안 은행권을 고정화시켰던 선발시중은행의 개념은 사라졌다. 자산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구조조정전 총자산 54조4,000억원으로 3위였던 국민은행이 자산규모를 84조5,000억원으로 불리면서 최대 은행으로 발돋움했으며, 하나은행은 지난 97년말 22조9,000억원에서 충청은행 인수와 보람은행과의 합병으로 54조2,422억원까지 늘려 자산규모로 당당히 5대 시중은행 대열에 들어섰다. 반면 1년전 가장 큰 시중은행이었던 조흥은행은 충북은행과의 합병을 성사시켰음에도, 지난 3월말 현재 총자산이 47조7,000억원으로 97년말보다 7조9,000억원이 줄어들어 순위가 6위로 떨어지면서 5대 시중은행에서 밀려났다. ◇「소프트웨어」의 개혁에도 자극제가 됐다= 은행 퇴출은 국내 은행에 새로운 관행을 몰고 왔다. 더이상 고객들은 부실한 은행에는 돈을 넣지 않는다. 은행 스스로 미래상황에 맞게 내부시스템을 순응하지 않으면 고객을 끌어낼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됐다. 무엇보다 은행퇴출에서 나타난 경험을 반영, 부실발생을 차단해가는 장치들이 마련됐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상임이사회의 비중을 강화, 은행장의 독단으로 인한 부실발생을 미연에 차단코자 했다. 여신전문가를 과감히 양성하는가 하면 은행에 이른바 「리스크관리부」가 핵심부서로 떠올랐다. 이는 전문경험을 가진 외국인 전문가들의 주가가 뜨는 결과를 잉태키도 했다. 가능한 충당금을 많이 쌓아 미래의 부실발생에 대처키 위한 작업들도 계속되고 있다. ◇퇴출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5개 은행의 퇴출은 분명 정부주도에 의한 「인위적 퇴출」였다. 그러나 이같은 행위는 말그대로 「구시대적」 작업이다. 정글의 법칙은 자연의 섭리다. 은행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선발은행의 한 임원은 『2000년초 은행권에는 자연도태의 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외국금융기관의 밀물속에서 더이상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은행들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하든, 강자에게 무릅을 꿇고 삶을 구걸할 수밖에 없다. 알아서 시장에서 물러나거나, 살기위해 나은 은행을 찾아 애걸하는 「선택적 퇴출」이 시장의 자연스런 섭리에 의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김영기 기자 YG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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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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