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현투파문 시작과 끝] 시장 냉대…정부요구 결국 수용

현대 파문은 「시장(MARKET)」에 의해 촉발된 「열흘간의 춘몽(春夢)」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부와 현대그룹이 투신경영정상화라는 매개체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지만, 해답을 요구한 세력은 바로 마켓이었기 때문이다. 또 해결책을 뻔히 알고도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시간벌이 게임」이었다고도 요약할 수 있다.현대투신, 나아가 현대그룹의 파문이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5일 정부의 투신정상화 방안 발표때부터. 금융시장은 정부가 정책조정회의에서 투신구조조정을 논의하면서 한투·대투에만 공적자금 처방을 통해 지원하고, 재벌 계열인 현대투신에 대해서는 지원방안을 유보한데 대한 실망감을 보였다. 결국 정책회의 이튿날인 26일 증시에는 현투지원유보가 현대의 유동성 위기설로 들불처럼 번졌고, 이는 크레디리요네증권의 보고서와 맞물려 현대 계열사들의 무더기 주가폭락사태로 이어졌다. 시장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정부와 현대그룹·채권단이 현대사태에 대한 본격 대응에 나선 것은 이때(27일). 주가가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이자 현대는 그룹차원에서 부랴부랴 계열사 조기정리방안을 발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발표한 내용의 재탕에 불과했고, 시장의 신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이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 회장을 만나 「결자해지」를 강조하며, 필요할 경우 증권금융채 발행을 통해 유동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재벌사에 대한 특혜지원」이라는 여론의 비판을 불러왔다. 또다른 분기점은 28일. 정부가 유동성 지원을 위한 명분을 현대측에 요구하면서부터였다. 그 명분은 다름아닌 총수일가의 사재출자. 현대측의 거부입장(이창식 현투사장)이 이어졌지만, 정부와 현대측의 숨가쁜 줄다리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금감위 고위 관계자들의 대체적 분위기도 상징성이 강한 사재출자에 모아졌고, 이같은 상황은 4월말일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현대는 「총수로서는 내놓은 것이 없다」며 난감한 입장만을 되풀이했으며, 정부도 현투의 정상화 방안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긴장감은 커져갔다. 5월 첫날, 여론은 계속해서 현투에 대한 명분없는 지원에 대한 거부감을 이어갔고, 李금감위원장은 「시장금리」를 통한 지원으로 방향을 바꿨다. 현대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 입장이 표면화된 것은 이날 오후 이기호청와대수석의 입에서 나왔다. 李수석은 현대총수가 현대투신의 유상증자때 실권주를 인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현대간에 총수출자를 놓고 규모와 방법 등에서 대립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 또한 초반의 사재출자 불가입장에서 한발 물러나기 시작했고, 2일로 예정됐던 현대의 정상화 방안도 연기됐다. 양측의 본 게임이 시작된 것. 그러나 현대의 대응자세는 여전히 정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5월3일에는 현투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고도 단호한 입장이 최종적으로 전달됐다. 이날 오전 李위원장은 현대투신의 생존문제(시장의 심판)까지 들먹거리며 심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뻔한 해답을 놓고도 미적거리는 현대측에 정면으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李수석도 현대에 1조2,000억원의 자본잠식을 책임지라며 구체적 액수까지 들고 나왔다. 겉으로는 이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지만, 정작 사태는 전날부터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현대측에서도 총수출자의 불가피성을 알고, 비상장사 주식의 출자분을 찾기시작한 것. 대상으로는 현대정보기술과 현대택배가 지목됐고, 1,000억원 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됐다. 현대는 대신 정부로부터 연계콜 해소를 연기해주도록 당근을 요청, 사실상 허가를 얻어냈다. 그러나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현대가 자구계획으로 세운 것이 불가능해졌을때 어떻게 할 것이냐의 부분이었다. 시장에 신뢰를 주기위한 마지막 담판이었다. 금감위 메신저 역할을 했던 진동수(陳棟洙)증선위원도 3일 정오께 현대측에 담보제공의 필요성을 은유적으로 전달했다. 현대측은 다시한번 장고에 들어갔고, 이날 저녘에는 담보부분이 빠진채 총수출자(1,000억원)부분만 언론을 통해 확인됐다. 정부는 다시한번 불만을 표시했고, 자구의 「개런티(보장)」을 위한 담보요구가 이날 밤 다시한번 현대측에 강하게 전달됐다. 현대는 결국 3일밤부터 거듭된 마라톤회의끝에 4일 오전 8시께 정몽헌(鄭夢憲)회장의 허가를 거쳐 「사재출자·담보제공」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마련했고, 이는 사태의 장기화를 바라지 않는 정부와의 적당한 타협으로 정리됐다. /김영기기자 YGKIM@SED.CO.KR 김영기기자YGKIM@SED.CO.KR 입력시간 2000/05/0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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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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