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4월 8일] 소송이 뭐길래

“하루 빨리 모두 털어버리고 영업이 정상화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소송 얘기는 더 이상 입에 올리기도 싫습니다.” 얼마 전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키코(KIKO)소송을 취하했던 한 수출업체 대표는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손사래부터 쳤다. 이 업체는 올해 초 키코를 둘러싼 손실책임여부를 가려달라며 다른 업체들과 공동으로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지만 이런저런 사유를 내세워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중소업계에선 이에 대해 은행들이 소송기업의 예금 인출을 막거나 기존 대출금을 갚으라고 하는 등 소송을 취하시키기 위해 갖은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형적인 갑과 을의 관계에 놓여있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장기간의 소송을 이끌어가기엔 힘이 벅찰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근 기업들에 적잖은 피해를 안겨준 환변동보험도 키코와 엇비슷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출보험공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중인 업체들은 요즘 소송에서 빠지라며 회유를 당하거나 가압류 신청에 시달리는 등 직간접적인 소송 취하압박을 당하고 있다. 한 업체는 소송을 준비해오다 법인 명의의 부동산과 예금에 가압류조치가 들어오자 고심 끝에 소송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 업체 관계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영세기업에게 가압류 조치는 사실상 경영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추가적인 손실 발생을 막기 위해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집단 소송을 고려했던 또 다른 업체는 수보측으로부터 “어차피 ‘승산이 없는 게임’”이라며 “소송을 진행할 경우 향후 각종 보험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회유’를 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코스닥기업들은 지난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한다. 대내외적으로 악조건을 뚫고 장사를 잘했지만 키코가입에 따른 피해규모가 워낙 컸던 탓이다. 처음부터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불리웠던 이 같은 소송에서 중소기업의 승리를 장담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키코나 환변동보험 피해의 책임여부를 떠나 이번 소송에 기업체 생존을 위한 마지막 희망을 담았던 영세 중소기업들이 힘없이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흔히들 기업천국을 얘기하지만 소송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우리 중소기업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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