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등 일반상비약의 약국외판매를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여야 정치권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다. 이익집단의 입김에 밀려 국민의 편익이 무시됐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일부 의약품의 슈퍼 판매를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올 정기국회 중에는 처리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국민의 관심사인 법안이 상임위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약사법 개정안은 내년 2월 임시국회로 넘어가게 됐지만 총선 등을 감안하면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법안 개정이 장기 표류할 처지에 놓인 셈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약사법 개정안을 이번에 처리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약사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6만여명에 달하는 약사들이 집단 반발할 경우 선거에 불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한약사회는 공공연히 약사법 개정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력을 행사해왔다.
보권복지위 소속 일부 의원들은 슈퍼에서 상비약을 팔 경우 약품 오남용 우려가 커진다는 점을 약사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로 들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안정성이 입증된 감기약ㆍ해열진통제ㆍ파스 등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슈퍼 판매를 허용하려는 약품들의 경우 의사들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더구나 이미 여러 차례 전문가토론 등을 통해 타당성이 입증됐고 국민의 83%가 찬성할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일부 상비약의 약국외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개정안이 무산된 것은 국민의 편익보다 특정 이익집단의 눈치를 살피는 국회의 태도 때문이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이익집단의 눈치를 살피며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약사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가 어렵다면 내년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입법이 성사되도록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만약 국민이 원하는 개정안이 무산될 경우 국회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