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9번째 주인 찾아 나선 ‘기구한’ 대성목재

◎36년 일인이 창업… 한때 달러박스/합판경기 시들 70년부터 적자 시달려/효성­유원 등 잇따라 인수­매각­부도7전8기가 기업에는 통하지 않나. 한보철강이 부도처리되자 그룹내 작은 한 계열사 직원들의 한숨은 깊디깊었다. 대성목재. 한보그룹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지만 주인을 8번이나 바꿔야 했던 이 회사는 한보의 부도로 다시 새주인을 찾아야하는 기구한 운명을 맞고 있다. 대성목재는 일제치하인 36년 일본인 기무라(목촌)씨가 인천 만석동에 조선목재라는 상호로 설립, 42년 대성목재로 상호를 바꾸었다. 광복후 대성은 적산관리자인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민간인의 손에 다시 넘어온 것은 지난 54년. 당시 최대의 무역업체인 천우사의 전택보씨가 인수, 합판경기의 활황세를 타며 국내 정상급기업으로 부상했다. 합판은 60년대 우리나라의 달러박스. 하지만 합판경기가 시들면서 대성도 내리막길을 향해 줄달음쳤다. 좋은 시절도 한때, 만년적자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단채 69년에는 정부의 부실기업정리대상으로 지정돼 경영권이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으로 넘어갔다. 이에 신동아그룹을 주축으로 원풍산업, 국제약품이 73년 경영권을 인수했지만 경영정상화는 난망이었다. 대성의 6번째 주인은 효성그룹. 그러나 지속된 적자로 부채가 8백억원이 넘고 자산은 부채에 비해 턱없이 부족, 골머리를 앓게 되자 정부는 86년1월 다시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했다. 이어 당시 최효석 유원건설회장은 정부와 조석래 효성그룹회장의 권유로 대성목재를 인수하게 된다. 유원은 인수당시 조흥은행으로부터 은행부채의 원리금상환을 10년동안 유예받는 조치를 얻어내기도 했다. 유원은 인수후 대성을 합판사업에만 전념토록한 결과 어려운 여건속에서 이익을 내며 사업을 꾸려왔다. 매출도 92년 1천52억원, 93년 1천2백77억원, 94년 1천3백74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 95년3월 든든한 지지자였던 모기업 유원건설이 부도나자 대성은 8번째주인인 한보그룹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이번 한보철강의 부도로 대성의 7전8기는 실패로 끝났다. 또다시 9번째 주인을 찾는 작업도 극히 비관적으로 보인다. 한보의 주력인 한보철강의 부채가 너무 많고 딸린 식솔이 대성이외에도 20여개나 되기 때문. 한때 한시대를 풍미했던 기업이 이토록 철저한 비운의 길을 걸은 것이 마치 한편의 기업소설 같다.<문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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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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