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국민건강 위협하는 소비기한 표시제

정부가 최근 우유ㆍ빵 등에 적용되는 현행 유통기한 표시제를 '소비기한 표시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가공식품 유통기한 표시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소비기한은 해당 식품을 먹어도 건강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소비 최종 시한으로 유통기한보다 길다. 예를 들어 우유는 유통기한이 제조 후 5~7일이지만 '소비기한'개념을 적용하면 영상 4도 이하에서 보관할 경우 최대 한 달까지 지난 우유도 먹을 수 있다. 정말 번뜩이는 아이디어다. 정부는 한 해에 유통기한 때문에 발생하는 식품업체들의 반품비용이 6,500억에 이른다며 소비기한 표시제의 도입 필요성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이 정도면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우유를 고르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일부러 진열대 뒤쪽부터 손을 뻗었던 기자의 경험이 오히려 부끄러워질 정도다. 정부는 식품업체들의 반품 비용을 줄여주면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소비기한을 넘지 않은 제품을 싸게 판매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물가 잡기에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서민들이 즐겨 먹는 가공식품의 가격 안정 효과까지 노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정책이 있을까.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되면 신선한 우유를 먹을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건강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일주일 된 우유와 한 달이 다 된 우유의 신선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식품 가격을 내려줄 테니 조금 덜 신선한 우유를 먹으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식품업체들의 불필요한 반품 비용을 줄여 제품 가격을 인하하겠다는 의도는 좋다. 또 이 때문에 물가 안정까지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는 정작 소비자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아쉽다. 가격만 싸다면 제품의 질은 조금 떨어져도 소비자들이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위험하다. 더구나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소비기한을 넘기지 않아 싸게 파는 식품은 건강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즘 분위기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정부가 '돈 없는 사람은 조금 덜 신선한 우유를 먹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이번 대책을 내놓지 않았겠지만, 기분이 영 개운하지 않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