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11월 19일] 대통령과 국왕… 인기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이익이지만 당장은 인기 없는 견해를 받아들이도록 의회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설령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 관련 발언과 비슷해 보인다. 이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들어보자. "인기를 끌고 인심을 얻는 데는 관심 없다. 대한민국을 선진화하고 모든 분야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는 단단한 각오로 일하고 있다." 독단은 약일까 독일까 워싱턴과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반대와 저항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의를 중시했다는 워싱턴이 "인기를 의식하지 않겠다"고 말하게 된 계기는 꼭 215년 전인 1794년 체결된 런던조약에 있다. 존 제이 미국 초대 대법원장이 외교업무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특사를 맡았기에 제이조약으로도 불리는 런던조약은 북미 중서부 지역에서 영국군이 철수하는 대신 영국인 채권자에 대한 미국의 채무이행 등을 내용으로 담았다. 조약은 분노를 불렀다. 영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을 굴욕적으로 맺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항의시위에 모인 군중은 제이의 허수아비를 교수형시키고 불태웠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제이는 정치생명을 잃었다. 정권도 바뀌었다. 난공불락 같았던 워싱턴의 참모세력을 누르고 토머스 제퍼슨이 1800년 미국의 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에도 제이조약에 대한 민중의 반감이 깔려 있다. 제이조약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우방국인 프랑스를 서운하게 만들어 고립을 좌초했다는 시각도 있고 실제로 조약체결 후 사이가 벌어진 미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만 없었을 뿐 대서양에서 2년간 상대국 무역선 나포 경쟁을 펼쳤지만 신생 미국이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대세다. 국민의 반대에도 제이조약을 밀고 나간 워싱턴의 '리더십'을 칭송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제이조약 체결 7년 전인 1787년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왔다. 삼부회에 출석한 국왕 루이 16세는 새로운 세금의 징수가 불법이라며 징세의 명분을 밝혀달라는 의원들의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징세는 합법이다. 짐이 원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물산이 가장 풍부했던 프랑스의 국왕이 왕실 경비가 없어 세금 징수를 요구했던 이유는 재정파탄에 있다. 미국 독립전쟁 지원과 왕실의 사치로 빚더미에 허덕이던 상황. 역대 재정총감들이 면세 계층인 성직자와 귀족에 대한 과세를 추진하다 실패한 마당에 부르주아 출신 의원들에게만 증세를 요구했던 국왕의 말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다.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과 참수형. 워싱턴과 루이 16세의 사례는 서로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는 본질을 공유한다. '내가 옳다'는 독선과 아집. 확신이든 아집이든 두 사람은 국민이나 의원들의 의사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뜻대로 일을 진행시켰다. 물론 결과는 딴판이었다. 한 쪽은 번영의 토대를, 다른 한 쪽은 체제(앙시앵 레짐)의 몰락을 가져왔다. 인기는 민심이며 천심 "인기와 인심에 관심이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과 루이 16세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부디 워싱턴의 경우와 비슷하면 좋겠지만 낙관적이지 않다. 과정의 차이 때문이다. 워싱턴은 제이조약 체결 후 꼬박 1년 반을 공들여 의회를 설득한 끝에 3분의2 이상의 동의로 비준을 얻어냈다.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에서 우리 정부가 워싱턴처럼 공을 들였는가. 환경을 따져보면 우리는 프랑스 사례와 비슷하다. 기득권층이 납세를 거부해 혁명을 야기한 프랑스와 탈세와 병역 기피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현실은 닮은 꼴이다. "인기에 관심 없다"는 말은 국민을 더욱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인기와 인심은 민심과 천심으로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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