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숨은 세원 찾아 곳간 채우려 하지만 농업·산업계 반발 불보듯

■수술대 오른 비과세 감면제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경제형편이 어려우면 조세당국이 먼저 나서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했지요. 지금은 경기가 나쁜데도 예산이 부족하다며 세금감면을 줄이겠다니 정부가 재정을 통한 경기조정 기능을 상실했다는 걱정이 듭니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이 26일 조세연구원을 통해 발표된 정부의 비과세ㆍ감면 정비 용역보고서 내용에 대해 밝힌 의견이다. 일부 세제혜택의 형평성 문제나 불합리성을 개편하겠다는 정부의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아 정책 속도ㆍ수위의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


정부는 일부 조세혜택이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 상대적으로 쏠려 비과세ㆍ감면제도에 칼을 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조세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방향이 옳더라도 경제ㆍ정치적 환경을 고려한 '세련된 조율' 없이 의욕만 앞세우다가는 역풍만 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제도 개편 강도와 속도가 지나치면 농민ㆍ산업계ㆍ금융권 등의 강력한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경제사정에 따라 탄력적인 조세정책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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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지원해야 할 여당 지도부의 호응 여부도 미지수다. 국회에서 세법개정을 다루는 조세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은 농민 등에 대한 비과세ㆍ감면 축소를 담은 정부 용역보고서와 관련, "정치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경제적 약자들의 비과세ㆍ감면 혜택을 줄이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주요 비과세 및 분류과세 금융상품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으로 전환하자는 용역보고서 제언에 대해서도 "아직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며 신중론을 폈다.

금융과세의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정부 방침이 실제 세수증대로 이어질지도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황재규 신한은행 세무사는 비과세 장기저축보험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으로 전환하는 데 대해 "입법이 된다고 해도 시장에 대한 영향이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올해부터 장기저축보험 비과세 범위를 납입보험금 2억원 미만 상품 등으로 제한하는 법안이 오랜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돈 좀 굴리는 자산가들은 '세금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미리 절세 금융상품들에 상당수 가입한 상태다.

이처럼 농민, 금융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더 걷기가 어려워지면 정부로서는 상대적으로 길들이기 쉬운 대기업 등을 압박하는 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는 연구개발(R&D)이나 설비투자 관련 비과세ㆍ감면 혜택처럼 대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보는 항목들을 축소ㆍ폐지하거나 수혜 요건을 강화할 방침이다. 조세연 역시 정부 용역보고서에서 "특정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된다는 지적을 반영해 세액공제율을 낮추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설비투자 조세지원 축소ㆍ폐지를 권고했다. 법인세 등과 관련한 R&D 관련 세제혜택에 대해서도 준비금 손금산입제도 폐지, 인력개발비 인정범위 기준 강화 등을 제언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본부장은 "세계 주요 국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R&D 지원이나 감세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데 우리나라만 세제지원을 줄이면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청년들은 중소기업계에서 20만개가량의 일자리가 남아돌아도 눈높이가 맞지 않는다며 가지 않고 대기업만 바라보고 있다"며 "대기업이 세부담 증가로 투자와 고용을 망설이게 되면 결국 청년실업 해소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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