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실향민 가족 K사장의 독백


며칠 전 실향민 가족인 중소기업인 K씨와 식사를 했다. 그의 아버지는 북에 자식 셋을 둔 상태에서 월남한 뒤 재혼해 7남매를 뒀고 남쪽의 동생들은 북의 형과 오빠를 위해 매달 기금을 모은다고 했다. "반동 가족으로서 당했을 고초를 생각하면 정말 미안하다. 굶주린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남측도 과거 보릿고개에 시달리고 월북자 가족은 연좌제로 고생했는데 북측 상황은 훨씬 심각하지 않겠나." K씨는 "브로커들이 생사 확인에만 1억~2억원(선금 50%), 빼내올 때는 두당 수천만원을 추가로 요구하는데 주위에서 사기를 당한 사람이 많아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정부가 생사확인에 나서는 것은 고사하고 민간의 인도적 대북지원도 막으니 분통이 터진다"며 조심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어려서부터 어른들로부터 일제강점기 독립투쟁과 해방 이후 혼란, 한국전쟁, 보릿고개 얘기를 많이 들었던 영향인지 마치 내 문제인 것 같은 감정이입이 느껴졌다. "고령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복 형들과 만나게 해드려야 하는데…"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K씨를 보면서 갑자기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고(長江後浪催前浪), 새 세대는 앞 세대를 교체한다(世上新人換舊人)'는 말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하지만 앞 물결이든 뒷 물결이든 부딪히고 흔들리면서도 결국 바다로 나아가는 역사의 유장한 물줄기를 상고하면서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결 사이에 이리저리 마찰음을 내면서도 궁극적으로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요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규탄 물결과 별개로 동포의 배고픔을 덜고 남북 모두가 이익이 되는 경제협력이라는 또 다른 물결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분단비용을 걷어내고 통일비용을 줄이며 통일편익을 누리는 길이다. "김정일 정권은 무조건 반대하지만 동포들의 생존권도 챙기지 않는 현 정권의 대북정책도 반대한다. 북의 형제를 그냥 모른 체하고 살라는 얘기냐"는 K씨의 독백이 귓가에 울린다. 마침 유럽연합(EU)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배분의 투명성을 꾀하며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유엔의 수장을 배출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일순 자괴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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