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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대형건설사 현금 창구 줄줄이 고갈… "리먼때보다 더 어렵다"

■ 출구 안 보이는 위기의 건설업<br>재개발·재건축 해외서 돈줄 막혀 현금흐름 최악<br>회사채 만기·공공발주 줄어드는 내년이 더 걱정

대규모 미분양으로 자금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산의 한 아파트단지. 한때 대형 건설사의 주 수익원으로 꼽혔던 주택사업은 경기침체 장기화로 건설업 유동성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10년 사이 최악인 듯합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고전하고 있습니다. 갖가지 방법으로 현금은 마련하고 있지만 사업을 통해 돈을 벌지 못하니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A건설 재무담당자)

"재개발·재건축 등 수주 영업비도 줄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10% 이상 이익을 거두기도 했는데 지금은 주택시장 침체로 손실을 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돌아요. 조만간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이라는 얘기도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B건설 재개발·재건축 사업 담당자)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중견 건설사들에 이어 대형 건설사들의 유동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공사 발주가 급감한 가운데 경쟁은 더욱 심화돼 이익률이 하락하는 상황인데다 믿었던 해외사업 부문에서도 원가상승 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이 최악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로 공공공사 발주가 내년에는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주택시장 역시 침체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보이지 않고 있어 현금이 유입될 창구가 없기 때문이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동성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며 "특히 내년은 건설업계에 막대한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이어서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 영업 현금흐름 최악= 4일 서울경제신문이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9위까지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지난 3·4분기 현금흐름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업체의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흐름이 지난해보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정도가 심한 업체는 올해 해외사업장의 손실규모가 확대된 GS건설이었다.

지난해 3·4분기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흐름이 -3,598억원이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1조3,226억원으로 4배 가까이 마이너스 폭이 확대됐다.

현대건설 역시 지난해 -4,395억원이었던 영업 현금흐름이 올해는 -1조357억원으로 악화됐고 사상 최대 수주 실적을 기록한 삼성물산조차 지난해 1,498억원에서 올해는 -3,904억원으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대우건설과 포스코건설·롯데건설·SK건설은 지난해보다 상황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흐름이 계속됐고 현대산업개발만이 유일하게 플러스 흐름을 기록했다.

반면 재무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모든 건설사가 플러스를 기록했다.


영업활동으로 현금유입이 제대로 되지 않자 부족한 현금을 사채발행이나 차입금 등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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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현금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현대건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올해 3·4분기 6,299억원 감소했으며 삼성물산은 4,012억원, 대림산업 4,493억원, 포스코건설은 2,278억원 줄었다.

막대한 사채와 차입금을 동원한 GS건설은 현금이 3,026억원 증가했다. 다만 현대산업개발·롯데건설·SK건설은 보유 현금자산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분양 사업장 등 돈이 들어와야 할 곳에서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아직은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상황이 계속 악화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유동성 위기 더 심화 우려=대형 건설사들까지 현금흐름이 악화된 것은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주요 현금유입 창구인 아파트 분양 등 주택사업에서의 실적이 저조하고 안정적으로 현금을 얻을 수 있는 공공공사 발주가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금흐름이 악화된 데는 발주처에서 받아야 할 기성액보다 원가투입을 더 많이 한 이른바 '미청구 공사'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C사 관계자는 "미청구 공사가 증가하면 대개 계약조건이 악화되고 있거나 추가 원가가 투입될 가능성이 있어 기업의 유동성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건설의 경우 올해 3·4분기 미청구 공사가 9,127억원으로 증가해 유출된 현금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대건설의 미청구 공사는 지난해 같은 기간 2,872억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의 SOC 투자 축소로 국내 건설업 규모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대한건설협회는 올해 국내 건설시장 규모가 90조4,000억원(추정치)으로 10년 사이 최저 수준이었지만 내년에도 91조7,000억원 정도로 크게 개선되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올해 하반기 건설사들의 아파트 분양이 집중되고 있지만 서울과 위례신도시, 대구와 울산 등 지방의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분양시장이 얼어붙은 상태다.

물론 취득세 영구감면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등의 시장 활성화 대책들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지만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주택구매심리가 크게 개선되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건설사들의 회사채 규모가 4조원에 달하는 것도 '유동성 위기'가 더욱 심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한다.

김 연구위원은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건설사들의 수익성 악화가 계속된다면 내년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의 차환발행 조건도 상당히 나빠질 수 있다"며 "결국 현금흐름 악화로 인한 악순환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이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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